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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쩜오

[만춘파소] 악몽

감감님 2018. 10. 22. 23:34



백하가 집을 나온 뒤로 파소는 종종 만춘의 집을 찾아갔다.
제 사랑하는 연인의 소중한 형제가 걱정이 되어 찾아오는 거였겠지.
만춘은 속이 훤히 보이는 것이 싫어 문을 열어 주기 싫었지만
그럼에도 만춘은 매번 파소를 집에 들였다.


처음 그가 사가지고 온 것은 화과자였다.
영, 식탐이 없던 만춘은 그것을 시원찮게 바라봤지만 어째서인가 신난 사람은 파소같기도 했다.
만춘은 심술이 나서, 백하가 없어 어쩌냐 물었는데
파소는 대답이 없었다.


그 뒤로 파소는 각종 놀잇감을 가지고 찾아왔었다.
도깨비 인형도 있었고 말을 탄 기사의 모형도 있었다.
만춘은 늘 아무 반응이 없었지만 파소는 꼬박꼬박 그를 찾아왔었다.
그랬었다. 그랬다.


하루는 만춘이 꿈에서 깊은 산골을 헤매는 오래 전의 악몽을 되꾸어
괴로워하였을 때, 무언가 따뜻한 것이 제 이마를 감싸는 것을 느꼈었다.
꿈에서 깨어 백하야, 불러보면 아무도 대답치 않았고 방 안엔 아무도 없었다.


또 하루는 웬 어린 짐승이 노여워하며 자신을 마주 보고 있는 꿈을 꾸어
왜 그리 쳐다보느냐, 하고 그를 만지려다 그것이 사람의 살결로 바뀌는 경험을 하였다.
숨결. 살내음. 그 모든 것이 생생했다.
그가 숨을 헐떡이고, 입 밖으로 내뱉던 숨까지도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래도 꿈에서 깨면 늘 혼자였다.
만춘은 귀신에 홀린다 싶어 괜히 방을 어지럽혀도 보고
태양을 자주 보고 그랬다.


또 그리고 어느 날,
만춘이 열병을 앓는 날이었다.
한동안 악몽을 꾸지 않아 안심하였더니 이번엔 질병이구나, 만춘은 혀를 찼다.


의식이 흐리고 몽롱하여 그저 누운 채 천장만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제 방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말 없이 제 손을 잡고 제 뺨을 부비며
구슬프게 그 짐승처럼 자신을 바라보다
가만히, 어떤 신에게 기도도 드려보고
이내 그의 온기가 멀어졌다.



-가지 마라.



그는 꽤 놀란 듯 제 자리에 서서 쉽사리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만춘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기어코 일어나 흐리멍텅한 시야로 그를 보려 애썼다.



-누구냐. 매일 밤 찾아오는 귀신놈이느냐?



그가 웃고, 만춘은 웃어? 하고 심통이 나려던 찰나,



-형님께서 적적할까 그랬습니다.



너무도 익숙한 그 음성이, 내뱉어졌다.
하지만 나는 이미 예상한 듯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이, 서 있었다.


파소는 몸을 돌려 만춘을 마주했다.
그가 어떤 얼굴인지 보이질 않아 만춘은 애가 타는데,



-이제 곧 백하가 돌아올 시기이니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잠깐, 만춘은 그를 붙잡고 싶었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았고
파소는 구름에 감춰진 달처럼 사뿐히 방을 나서고 없었다.


만춘은 기이하게 잠이 쏟아지는 것이, 이것조차 꿈인가 싶어 싱숭생숭한데
다음 날 백하가 수련을 마쳐 돌아오고, 파소는 더이상 집을 찾아오질 않았다.


백하에게 그의 안부를 물었지만 백하는 말 없이 웃을 뿐이었고
그 뒤로 한 달이 지났을까 백하는 파소와 혼인을 하고 싶다 말하였다.


그 뒤로 또 꿈을 꿨다. 어린 짐승이 여전히 자신을 마주 보는데
자신은 아무리 그것에 닿으려해도 그의 눈빛을 알 수 없어 손을 뻗질 못했다.


그의 기도소리가, 제 뺨에 대던 살결이, 온기가 생생하였고
그것은 악몽보다도 짖궂게 나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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