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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26
터억. 뭔가가 제 앞의 나무상자위에 올려진게아닌가. 이건 또 무엇인가 하고 고갤 든 영감은 그만 잊고있던 제 본분을 깨달고야말았다. 구두닦이.
사내는 꽤나 비싼 서양구두를 신고서 중절모를 쓰고있었다. 눈을 보려해도 햇빛이 역광인지라 사내의 모습은 새까맣게 그림자에 가려져 형태를 가리기도 힘들었다.
"이 근방에 김영신이라고 들어보았소?"
거들먹하게 묻는 목소리는 걸걸한것이 마초냄새를 훅 풍긴다, 니미럴 눈치없는것도 다보는구만. 다들 도망가기에 정신없는 와중에 느긋하니 구두나 닦으려는 사내가 가엾어 쯧쯧 혀를 차던 영감은 구두약을 문지르다 그만 흠칫, 이곤 또 한번 사내를 쳐다본것이다.
눈. 그림자에도 가려지지않는 그 눈은 어쩐지 시푸른 불빛을 감추고있었다. "하와이 피스톨이 온다는구만!" 마침 또 무슨 우연에서인가 상점주인이 헐레벌떡 나와선 꽃바구니를 든 처자들에게 소식을 알리곤 급히 자릴 피했다.
영감의 눈동자는 그를 보다 사내에게로 굴러갔다. 꿈쩍도않는 사내에 설마, 하곤 하하, 너털웃음을 지으며 "글쎄에 여기 조선인이 한둘이 아니고.." 하며 설마 제 도련님이겐가 한심하단든 자조를 지으며 다시 구두약을 문질렀다.
"............"
영감을 응시하던 사내는 담밸 태우며 흠, 발을 바꿨다. 아직 마저 끝내지않은 상태에서 발을 바꾼 사내에 영감은 괜히 움찔이다 사내를 슥 노려보다ㅡ그역시 영감을 뚫어져라 응시하고있었다ㅡ기가 눌려 푹 숙이곤 묵묵히 구두약을 바르며 '가다가 인질이나잡혀라 요놈'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곧있으면 제 도련님이 올 시간이었다. 다급해진 영감은 저답지않게 부들부들떨리는 손을 에이, 제 스스로 욕을 하다 사내가 저를 내려다보자 그를 살피며 대충 구두를 문지르곤 어정쩡하게 끝마친것에 자신도 이상황이 매우 어색하단걸 아는지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러다 돌연 손을 내밀었다.
? 담뱃재를 털던 사내가 발을 내리며 돈을 영감 손 위에 올린다. "훠이", 영감은 돈을 쥐어 품안에 넣으며 어서 가라 손짓했다.
사내는 뭔가 이상하다 느낀듯 가지 않고 영감을 자꾸 쳐다봤다. "훠이", 영감이 또한번 손을 휘둘자 그제야 영 찝찝하단 얼굴로 뭐야, 중얼이며 떠났다.
어휴... 저게 뭐라고 저가 이리 떠는건지, 영감은 한숨놓았단듯 흐르지도않는 식은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뭘 봤길래 한숨을 쉬어?"
깜짝. 영감이 고갤들자 흐뭇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제 도련님이 걸어오고있다, 영감은 비즈니스라고 인상을 쓰며 목적지를 턱으로 가리키곤 빨리 자리를 뜨려 정리했다. "폼은", 그는 영감의 모습을 삐죽 보고는 터벅. 이내 진지한 얼굴로 술집안에 들어섰다.
탕탕. 상대가 술에 절여 누워있는덕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시시하구만, 뒤에서 영감이 혹여나 긴장을 빡 줬던 몸에 힘을 풀며 중얼이자 그는 그를 흘긋 쳐다보곤 묵묵히 새로 장전을 했다.
"내가 오늘 별 미친놈을 봤는데말이에요, 그 미친놈이 빛깔나는 서양구두를 신고서 글쎄, 뒤에서 하와이피스톨이 온다고 그리 난리가 났구만 느긋하게 구두닦아달라고 턱. 발을 올리는게 아니에요? 허 참 별 미친놈을 다봤나..싶어 그래도 구두는 닦아줬죠"
"근데"
근데! 그 미친놈이 글쎄 도련님 이름을 부르는게 아니에요!
멈칫. 파이프를 물며 걷던 그는 걸음을 멈춰서선 영감을 쳐다봤다, "설마." 하며 웃으며 걷자, "진짜라니깐!" 영감이 흥분을 하며 소리쳤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영감말곤 모두 죽고없어, 있어봤자 학창시절친구들뿐인데 모두 독립운동하다 죽었지."
"그게 뭐 도련님찾는거였겠습니까, 조선천지에 김영신이란 이름이 한 둘이 아니고.."
듣자하니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 개나소처럼 흔하다 들려 영신이 영감을 노려보자 금방 깨갱, "아니.. 어르신이 지어주신 이름인데 물론 귀한 이름이죠." 하며 바로 꼬릴내렸다.
"그나저나 기이한 사람이네, 코쟁이놈들 구둘신은 조선인이라.."
"뻔할 뻔자로 매국노 아니겠어요"
영신이 피식웃자 영감도 그제야 긴장이 풀린듯 웃으며 거들먹거렸다, 그나저나아 오늘 사냥은 재미가 없네에 도망치지도않고 말야.
입안이 웃음을 머금고서 걸어가던 영신은 너머로 무의식적이게 고갤들다 스쳐가는 사람의 실루엣에 눈길이 멈췄다.
"난 또 총알이란 총알은 대따많이 챙겨뒀는데, 써보지도못하고 아깝게시리.. 그래도 돈을 그대로 주겠죠?"
하고 옆을 돌아보려던 영감은 저가 돌아보기도전에 튕겨져나가버린 영신에 깜짝, "도련님?" 뭐에 홀린것인냥 벌써 저 멀리까지 가있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도련님!" 그제야 뒤늦게 버벅거리며 발을 뗐다.
"도련님!!" 뒤에서 영감이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것이 듣고는 "먼저가!!" 영신은 따라오지말라는듯 손을 저어댔다, 그러나 못들은것인지 영감은 계속해서 헐떡거리며 따라오고 뒤돌아 그모습을 확인한 영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니 대체 뭘 보고서 저런데. 총을 너무 두둑히 챙긴것인가 한걸음 한걸음이 바닥이 꺼질듯이 무겁고, 헉헉거리며 줄줄 흐르는 땀방울이 눈앞을 흐리게 해 제 앞의 도련님이 두갈래, 세갈래 보이다 결국, 끼익 멈춰서 허헉였다. 젊네.. 젊어..
한편 머리가 휘날리며 망가질정도로 있는힘을 다해서 뛰어가던 영신은 문득 텅 빈 거리를 가로질러가는 전동차에 멈춰섰다. 저가 본 이가 그 안에 타선 뭣도모르는 얼굴로 먼 곳을 응시한채 멀어져간다, 씨.. 영신은 인상을 쓰고서 그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봤다.
"도련님!!" 죽을만치로 뛰어온것인지 빽 소리지르며 결국 녹슨것같은 제 몸을 이끌고 끝까지 뛰어온 영감이 제 앞에 서자 영신은 흐트러진 머릴 쓸어넘기며, "놓쳤어." 짜증섞인 말투를 씹어뱉었다.
"아니 대체, 헉, 누구시길래.."
영신은 또 한번, 여운이 남는지 그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봤다.
텅 빈 거리처럼 그의 마음도 따라 휑하니 허전했다.
***
파이프를 빨아들이며 여유롭게 걸어가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간 건널목쪽엔 익숙한 이가 걸어가고있었다.
'염석진..?'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스치기도전에, 몸은 이미 튕겨져나갔었다. 알 수 없는 두통으로 시야가 어질, 심장은 빠르게 뛰어대어 정비가 덜 된 기계가 뛰듯 덜컹덜컹였다.
마냥 깨끗했던 얼굴은 콧수염이 자라 덮고있는둥 세월이 묻어난 얼굴이었지만 틀림없는 석진이었다.
"도련님."
번쩍. 잠에 들었던것인지 영신이 눈을 떴다. 영감이 심각하게 그의 옆에 앉아있는것을 괴이하게 쳐다보며 영신은 옆을 쳐다봤다.
다각 다각 다각, 말굽소리에 아늑한 공간을 보니 마차안인모양이다. "깜빡 잠에 든건가", 중얼이며 영신은 순간 너무 허전하고 허망한 속을 축이며 등을 기대는데, "도련님.." 또 한번 저를 부르는 영감의 목소리에 또 뭐냔듯 그가 바라봤다.
"어제 누구였는지 말씀 안 해주셨잖아요"
영신은 괜히 인상을 쓰며 눈을 감아버렸다. "도련님!"
"몰라 나도."
대답해주지않고 모른다 대답을 피해버리는 그에 영감은 단단히 삐친모양인지 도끼눈을 하고선 그를 쳐다봤다.
"뭐야, 그눈은?" 슬쩍 실눈을 떠보던 영신이 그모습을 보곤 묻자 흥, 그를 외면해버리며 "도련님께 실망했습니다" 란다.
그래 실망하세요. 란 듯이 영신은 똑같이 그를 외면해버리고서 꾹 눈을 감아버리자 이게 아닌데, 영감은 늘 자기 머리꼭대기에있는 제 도련님이 착잡한지 눈을 끔뻑대다 "아니 그니까 누군데 말씀안해주시냐구요..!!" 라며 개기는식으로 언성을 높혔다.
너 죽을래? 란 말이 확 보이는 표정으로 영신이 영감을 쳐다보자 깨갱, 물러나던 영감이 그럼에도 혹여나싶어 토라진 얼굴로 "정말 이러시깁니까, 우리가 일여년된것도 아니고.." 라며 웅얼여보지만 영신은 역시 꿈쩍도 않았다.
미련을 버린것인지 자신도 등을 기댄 영감은 문득 그 날의 도련님의 회상에 잠겼다.
아직도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그 등을 보며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뛰는 도련님은 처음이었지..' 생각했다.
***
담배 연기가 자욱한 좁은 가게. 뒤엔 중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이 아편을 피우며 취해 몽롱해져 가득한게 흡사 너구리굴이다.
기름을 발라 반질하고 곱게 뻗은 머리, 게이샤의 머릴 한 중국여성이 깊이 파인 미소를 지으며 고갤 기웃거렸다. 석진이 손가락을 접어 3을 만들자 그녀가 웃으며 뭔갈 내민다. 그것을 받곤 돌아서려던 그가 문득 멈춰서더니 그녀를 붙잡아 갑작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가볍게 키스를 나누고서 그는 웃으며 가게를 나왔다.
담밸 물며 수줍게 웃던 여성을 떠올리다 피식 웃은 석진이 여성과 키스하며 슬쩍 빼온 하나를 꺼내보았다. 키스를 나누며 그녀도 눈치챈모양이지만 눈웃음을 지으며 눈감아주는것을 보니 주인몰래 저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생각하던 석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손안에 딱 들어올만큼 작은 크기의 상자안엔 곱게 접은 종이들에 흰 가루가 들어있다. 그가 만족한듯 담밸 피우며 갑자기 써늘하고 매우 무표정한 얼굴로 연길 뱉어냈다.
아편에 취하고 취하게끔하는 골목은 시끄러운 중국인과 프랑스인들의 대화와 웃음소리로 시끌시끌, 화려한 등불아래 추하고 추하기 짝이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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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방에 하와이피스톨이 왔었다면서요?"
긴 곰방대를 뻐금거리며 흡사 조선시대 기녀들의 모습을 따라한 게이샤들이 모여 키득거린다. 붉은 입술 붉은 눈가 창백할정도로 흰 피부. 그 옆에서 인력거를 기다리며 담밸 피우고있던 석진은 그 대화를 엿들은 모양인지 흥미에 찬 얼굴로 담밸 훅 던져버리곤 연길 빨리 지우듯 손부채질을 하며 그녀들에게로 걸어다가갔다.
"하와이피스톨이 누구?"
한쪽 벽면에 손을 대고서 잔망스럽게 묻는 석진에 그녀들은 놀란듯 흠칫이다 곧 곱상한 조선인이 능숙하게 일본말을 하는것에 흥미가 끌린듯 웃으며 순순히 답했다.
"이탈리안인지, 중국인인지, 조선인이란 소문도 있고. 밤에 만나면 위험한 청부업자."
"어머 설마 모르는거야? 이 근방에선 유명한걸"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생긋 웃던 석진은 금방 식은 표정으로 귀를 후비다 손가락을 털며 그녀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고선 상체를 들이밀며 조선인? 이라며 되물었다.
"....우리도 자세히는 몰라, 만나본적도 없는걸."
"만났으면 지금 여기 없겠지."
석진은 알아들어먹었단듯 툭, 고갤 떨구고선 비틀비틀 다시 저가 서있던곳으로 걸어갔다. 뭐야? 그녀들이 이상하게 불쾌했던 그를 힐끔이며 수근거리자 석진은 새로 담배를 물며 그녀들을 향해 빙긋. 웃어보였다.
***
'죽을지도 몰라.'
창 밖엔 비가 내린다. 기차에 앉아 생각에 잠긴듯 비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던 영신은 바로 제 귓가에대고 속삭인듯 생생한 목소릴 떠올렸다.
"아직도, 어제 일 때문에 그리 뚱해있는거에요?"
도련님 이상하네에, 이런 모습도 있었어? 영감이 일부로 장난도 걸어보지만 도통 도련님의 안면에 씌인 그늘은 걷히질않는다.
"영감, 죽은줄알았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면 어떨거같아?"
"귀신인가 의심하겠죠"
"귀신이 아닌게 확실하면"
"그면 죽지않고 살았는갑다하겠죠, 왜요?"
음. 영신은 끄덕거리며 "아냐 됐어." 라며 다시 고갤돌렸다.
"혹시 어제 본 그 분이.."
도련님이 대답이 없다 아-. 깨달은 듯 영감은 "허헝, 그거 귀신이 곡할 노릇이겠네요 죽은줄알았던 동창이 살아있다라.." 라며 힐긋 제 도련님을 살폈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이 없자 오호라, 바로 감을 잡은 듯 소리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근데 왜, 경성엘 왔을까..."
***
시끄러운 기차역. 길을 묻고나서 덩그러니 서있는 제 도련님에게로 다시 걸어가던 영감은 문득 써늘한 기분에 고갤돌렸다.
말끔한 얼굴에 중절모. 익숙치않은 얼굴이지만 분위기가 어디서봤다.. 하고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결정적으로 사내의 구두를 보고선 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영감." 도련님이 저를 부르자, 아, 예에. 대답하며 그가 사내를 곁눈질하며 슬금슬금 도련님에게로 걸어갔다.
"거기 서서 뭐해"
"아, 아니이.. 그 남자가.."
"오늘 갈 곳은 요정이라고했나? 시끌벅쩍하겠네"
"아니...그가.."
"어물쩡거릴 시간없어, 빨리 가자고"
"아니 그게 아닌데..."
영감은 죽겠단 표정으로 제 도련님을 쳐다보다 먼저 가버리는 그에 아, 급히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가고없는 사내에 어쩌지, 눈을 끔뻑대다 결국 제 도련님 뒤를 따라 총총 뛰어갔다.
***
가야금의 가 자도 모르는 게이샤들이 엉거주춤 흉내를 내듯 가야금을 뜯는다. 발가벗어 흰 몸이 훤히 드러난 게이샤들이 한 명씩 안겨 앓는 소릴내고 그 속에서 같이 웃통을 벗은 석진이 술잔만 비우며 일이라 이야 중얼였다.
"이보게 석진, 그러지 말고 자네도"
저를 어떻게 해보려는것인지 제 손을 잡으며 웃는 일본인사내에 스륵, 손을 빼낸 석진이 그의 손에 빈 잔을 쥐어주곤 술병을 게이샤에게 내밀어 따르라 턱짓했다.
"비싸게도 구는군" 맘에 안든단듯 그가 중얼이는것이 귀에 들어왔지만 석진은 헛웃음을 지으며 잔을 비울 뿐이었다. '뭘 알지도 못하는게', 그는 정말 뜯을줄만아는지 가야금을 뜯는 여성을 흘긋이며 빈웃음을 지어보였다. '난장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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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멀찌감치서서, 요정을 바라보던 영감은 부둥켜안고 민망한 짓꺼릴하는 남녀를 보며 헛웃음을 짓고선 큼큼, 금방 표정을 지우며 터벅터벅 문앞을 지키는 사내에게로 걸어갔다.
그가 영감을 불쾌하자보자 영감이 무뚝뚝하게 종이를 내민다. '하와이피스톨.'
히이이익. 그가 놀라 물러나자 그 뒤로 "뭐야? 뭔일이야?"라며 눈이 짝 찢어진 악독해보이는 일본인이 나왔다. "하와이피스톨?" 그가 바로 무언가 행하려자, 철컥. 언제 온것인지 영감옆에선 영신의 손에 들린 총의 차가운 총구가 그의 머리에 닿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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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들은 게이샤가 비명을 지르려자 쉬. 금방 다른 게이샤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조용 조용히,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냔듯 요정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대피했다.
방에서나와 담밸 피우려던 석진은 문득 하나둘씩 살금살금 겁에질려 요정을 나가는것을 발견하곤 이상한것을 눈치채곤 담밸 뱉으며 몸을 움직이려는데 덥석, 그가 깜짝 뒤를 돌아보자 저를 붙잡은 손의 주인인 아까 가야금을 뜯던 젊은 게이샤가 침착한 얼굴로 서있었다.
"대피하세요. 되도록이면, 빨리."
"무슨일이야."
"하와이피스톨이에요. 어서 도망가요."
그러며 그녀는 석진을 이끌고 맨발로 요정을 나갔다. 어리둥절해져선 그녀에게 끌려나온 석진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옷고름을 정리했다.
"당신, 조선인이죠."
옷고름을 정리하던 석진의 손이 멈칫, 그래서 뭐. 란 얼굴로 그녀를 무뚝뚝하게 쳐다봤다.
"하와이피스톨은 조선인에게도 자비없어요.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모두 죽어요."
"잠깐, 그 얘긴 그가 조선인이기라도한단건가?"
그녀는 주저하는듯보이다 곧 고갤끄덕였다.
"그의 얼굴을 봤던 게이샤가 말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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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열심히 일하고계신데, 미안하구만"
꺄악! "넌 뭐야?" 영감을 보며 인상을 쓰던 일본인 품안에 안겨있던 게이샤가 벌떡 일어나 몸을 추스릴새도없이 도망쳤다. "뭐하는놈이냐고!" 그가 칼을 쥐며 묻자 "허허, 그걸로 뭐 어쩌실려고" 하며 영감이 느긋하게 총을 꺼내보였다.
그 뒤로 영신이 섬뜩하게 걸어들어온다. 뭔가 이상하단걸 느낀듯 그가 도망치려하지만 금방 주저앉고서 살려줘..! 소리쳤다.
"으아아아!" 벽뒤에 숨어있던 남자가 검을 들고서 달겨들지만 텅! 묵직한 소리와함께 가슴이 뻥 뚫려선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쯧쯧쯧, 혀를 차곤 영감은 주저앉은 남자에게로 다가가 쭈구려앉는데 "에, 뭐야." 그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아" 영감이 손사레를 치며 물러나자 주저앉은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영신의 눈에 들어왔다. "지렸네, 지렸어." 못 볼꼴을 봤단 듯 중얼이는 영감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영신의 탕. 방아쇠가 당겨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영감은 이젠 무덤덤해진듯 자신의 눈앞에 눈을 퍼렇게 뜨고서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고선 죽었나?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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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이상하게 일이 심심하게 풀리네, 빨리 하와이에 가란 계신가?"
걸어나오며 기이하단 얼굴로 중얼이자 한발자국 뒤에서 걷던 영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을 본 영감이 놀란듯 두어번 그것을 흘긋이다 "잘 풀리면 좋은거지" 중얼거리며 제 입도 같이 올라가선 가볍게 계단을 내려가더니 "아, 느낌이 좋네,좋아." 라며 뒤돌아 제 도련님 얼굴을 또 보고선 "술술 풀리네 술술 풀려" 또 빙긋 웃는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치자 보이는 눈.
수풀속에 숨은 석진이 쉬-. 제게 뭐라려는 게이샤의 입을 막으며 그들을 몰래 염탐했다.
"하와이가면 이제 뭐하고살죠?"
"뭐하긴, 먹고자고싸는거지 뭘."
"히야, 천국이네 천국"
금방 언제그랬냔듯 영신의 얼굴에도 미소가 돈다, 그것을 지켜보는 석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러다 들켜요..!" 게이샤가 속삭이지만 그는 들리지않는지 더욱 또렷하게 그를 쳐다봤다.
휙, 돌연 영신이 뒤를 돌아본다. "왜요, 쥐새끼에요?" 라며 탕. 영감이 방아쇠를 당겼다. "...." 한곳을 계속 응시하던 영신이 잘못느낀건가, 하고 다시 돌아서자 탕 탕, 두어번 더 방아쇠를 당기곤 아쉬운 얼굴로 쩝, 영감도 돌아섰다.
게이샤의 입을 최대로 막고있던 석진은 두사람의 발걸음이 아에 들리지않자 비로소 손을 풀었다.
석진의 눈이 푸르슴한 빛을 머금고서 반짝였다. 게이샤가 수풀에서 달아난후에도 그는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있었다.
***
"ただいるだけで
그냥 있는 것만으로
あなたがそこにただいるだけで
당신이 거기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
その場の空気があかるくなる
그 곳의 공기가 맑아진다.
あなたがそこにただいるだけで
당신이 거기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
みんなのこころがやすらぐ
모두의 마음이 평온해진다
そんなあなたに
그런 당신처럼
わたしもなりたい" (ただいるだけで, 아이다 미츠오)
나도 되고싶다
벤치에 앉아 하늘의 끝을 바라보던 석진은 나긋하지만 낮고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갤돌렸다. 저와같은 교복차림의 남학생이 슬쩍 저를 보곤 능글하게 웃는다, 석진은 고갤돌리지만 상대는 어느새 그의 쪽으로 다가와 손을 뻗어 벤치를 짚고 앉으며 "일본인?" 능숙한 일본말을 뱉었다.
피식. 석진은 무언갈 생각하는듯 하늘을 올려다보다 부러 인상을 쓰더니 고갤 내려 그를 보며 상해말로, "훌륭한 시네" 부러 중국인같이 손을 모아 흉내까지 내곤 목소리를 끌어 굵직히 말했다.
한쪽다릴 허벅지에 올리곤 앉은 남학생은 조금 당황한것인지 몸을 꼼지락거리더니 입술을 다물었다띄우며, "중국인이었나" 실망한듯 한국말을 중얼인다. 석진은 그런 모습을 능청스럽게 바라보다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켜며 "아아 좋다." 하며 들으란듯 크게 한국말을 뱉었다. 그가 석진을 기이하게 쳐다보자 석진은 그를 돌아보더니 능청스레 으쓱이며 "뭐하는가, 곧있으면 수업시간이네" 하며 주섬 제 옷을 챙겨 언덕을 내려갔다.
***
수업시간에 내내 손등에 뺨을 묻고서 영신은 진지한 얼굴로 칠판을 보며 수업에 집중해있는 석진을 지켜봤다. 조금 어려운지 연필을 입에 물고서 고민하는것처럼 보이던 그가 시선을 느낀듯 제 쪽으로 고갤돌리자, 깜짝 했지만 괜히 놀라지않은듯 영신은 굳어서 눈썹만 꿈틀였다. 석진이 그 모습을 가늘게 눈을 뜨고서 쳐다보는데 갑자기 영신앞을 누가 가린다.
퍽! 묵직한 소리와함께 볼이 빨게진 영신이 넋이나가선 눈을 깜빡인다. 다시 수업을 이어가며 칠판앞으로 나간 선생이 석진에게도 경고의 눈빛을 보낸다, 석진은 곧바로 정자세로 칠판을 본다. ..그러다가도 슬쩍, 영신을 봤다. 맞은 뺨쪽을 감싸괜채 책을 내려다보던 영신의 눈이 석진에게 굴러갔다, 석진은 휙 다시 칠판에로 돌아갔다. 영신은 그런 석진은 또 빤히 바라만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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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바 안에서 술을 마시던 영신은 잠깐 멍을 때렸던것인지 눈을 깜빡였다. 저와 시선을 맞추는 춤을 추는 여인보며 헤실헤실웃는 영감이 옆에 서있고, 맥주잔을 내려놓은 영신은 착잡한지 고갤숙인채 한숨을 쉬었다. 영감이 그를 쳐다보자 영신은 벌떡, 일어나 비틀비틀 걸어나갔다. 어디가냔듯 영감이 목을 빼고 쳐다보자 영신은 별거아니란듯 손을 저었다.
어엉.. 왜 저런대.. 멀어져가는 제 도련님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영감은 갑자기, 제 시야를 가리듯 나타난 여성에 "아 깜짝이야," 말을 뱉곤 어, 어어..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저를 보곤 웃는 여성과 부끄러운지 시선을 못맞추고 힐끔거리며 그나마 알고있는 일본말을 내뱉었다, "오하요.. 오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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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걷던 영신은 갑자기 저와 부딪힌 사내에, 움찔였다. 얼굴을 확인할 새도없이 떨어뜨린 상자를 집으려 몸을 숙인 사내에 사과도 않는 그를 불쾌하게 내려다보며 지나치려던 영신은 멈칫, 갑자기 고갤돌렸다. 상자를 품속에 넣으며 대수롭지않게 고갤들던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염석진..!" 이름을 불렀다. 눈을 동그랗게뜨던 사내가 방긋 웃는다, "오래간만일세"
"오래간만이고말고..!"
굳은듯이 서있는 석진과달리 영신은 덥석 금방 그를 끌어안았다. 안긴채로 석진이 곤란한듯 찡그려웃으나 "그래 오랜만이야," 라며 편한 웃음을 흘렸다.
떨어지며 차가운 두 손이 제 뺨을 감싸며, 어느새 붉게 충혈된 영신의 두 눈을 보곤 스륵 웃음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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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처럼 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해 시월 상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석류, 정지용)
장소를 옮겨, 주변에 주점으로 들어간 영신은 마주보고 앉은 석진의 얼굴을 호수를 내려다보듯이 관찰했다. 반짝거리는 석진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새어보이지않아 그것을 이상하다, 보는 그 모습엔 어린아이처럼 의문스러움과 왠지모를 순진함이 겻들어있다.
석진의 눈이 일렁 일렁, 희미해져가더니 서서히 눈을 감은 형태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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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 책상을 내리 친 얇은 나무막대기가 부러질것만같은 소리. 석진은 몸을 흠칫이며 고갤 들었다. 사나운 인상의 일본인선생이 그를 못마땅찮게 쳐다보다 그 옆의 학생에게 괜히 짝! 휘둘러갈궜다. 윽! 그가 몸을 가누지못하고 휘청거리자, "이 자식이" 선생은 다짜고짜 그를 발로 짓밟아댔다. 부들부들떨며 차마 제 옆을 보지못하는 석진이 지긋한 시선이 느껴져 고갤 든다.
벽에 등을 기댄채 저와 마주보게 선 쪽에서 영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동급생이 바닥에 깔린채 무참히 짓밟히는것을 바라보고있었다. "질척질척한 조선인! 짓밟아줘야 정신을 차리지!"
흥, 선생은 발길질을 거두곤 천으로 피묻은 제 신발을 문질러닦으며 슬쩍 석진을 흘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영신의 눈에 살기가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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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머지않아 징병에 끌려가게될거야"
영신은 말없이 제 신을 굳게 묶을 뿐이었다. 석진은 말없이 영신의 시를 읽고 또 읽을 뿐이었다. 영신은 발을 내리곤 고갤들어 석진을 보고선 그의 손아귀에서 종이를 빼앗으려다, 석진의 움켜쥠에 덜컥 멈췄다.
"이 시, 나 줘."
"왜?"
"왜긴, 너 보고 싶을 때마다 읽을려그런다"
"......"
왜 무슨 다신 안 볼 사람처럼 그래, 말이 나오려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쿡 발목이 잡혀선 말문이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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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 교탁을 부술듯이 휘두는 몽둥이. 일제히 허릴 90도로 숙이고서 공포에 떨고있었다, 영신 역시 아래입술을 꽉 깨문채 아무리 힘을 줘보아도 다리는 말을 안 듣고 자꾸 벌벌벌 떨었다.
"죽을지도 몰라."
담담한 목소리, 영신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학생들을 잡아오는 군인들의 군화소리와 벌벌떠는 이들의 신음소리로 혼잡했지만 그 목소리는 제 귀에 속삭인듯 선명했다.
아니야, 영신이 입을 벌리려는 순간 큼지막한 손이 밀리지않은 석진의 머릴 움켜쥐고서 그 속에서 끄집어냈다. 아까부터 머릴 밀지않아 눈에띄는 영신과 석진을 유심히 보고있던 군인이었다. 그가 영신 역시 끌고가려 손을 뻗으려자 그의 옆에 군인이 서둘러 그의 귓가에 뭐라 중얼이는것을 듣곤 흠, 영신을 못본 체 지나갔다.
그 군인이 무어라 중얼였을진 저는 알 것같았다, 필시 제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일것이다. 영신은 그저 천근같이 무거운 발을 떼지못하고 그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선 끌려가는 석진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고개 숙여!" 소리침에 강제로 뒷덜미가 붙잡혀 고갤 숙이니 그제서야 울컥 눈물이 났다.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있는지가 보여서, 영신은 눈물을 흘리지도 못하고 속으로 엉엉 울었다.
끌려가던 석진이 자꾸 뒤를 돌아보려했던탓에 "가만히 좀 있어!" 절 잡고있던 군인에게 따귀를 갈궜다. 무심코 그를 지나치던 장교가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등을 돌렸다.
"어이 거기!" 그의 옆으로 곧장 달려온 멸치같은 일본인이 석진을 잡고있는 군인을 불러세웠다. 석진은 핏줄이 터져 붉은 피가 번지는 벌건 눈을 치켜떠 장교를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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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네가 죽은 줄 알았어."
석진은 과거회상을 접곤 눈앞에 보이는 그저 영혼없이 제 앞의 맑은 술잔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죽다 살아났었지. 자네에겐 별로 해주고싶지않은 이야기야."
그러며 쭉, 잔을 비웠다.
세상이 바뀌면서 사람도 따라 바뀌었다면 이건 참 완전히 다른 사람같네.. 영신의 시선은 석진에게 고정된채 그도 따라 잔을 비웠다.
"너 내가 줬던 시,"
"연필을 쥐던 손으로 사람을 잡으니 감회가 좀 새롭나?"
무덤덤하니 고갤숙이고있던 영신이 번득 그를 노려봤다. 눈빛엔 미처 감출새도없이 당장이라도 무신경하게 총을 갈굴것같은 살기가 들려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어찌 알았느냐는 얼굴이기에 석진은 싸늘한 얼굴로 그런 영신의 얼굴을 하나 하나 눈에 담아뒀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긴장할거없어, 소문낼 생각도 없으니말야"
석진은 건조하게 담밸 물고서 불을 붙이곤 영신에게서 시선을 치웠다. 허리춤에 걸려있는 총이 느껴졌다. 영신은 탁자위에 두 팔을 올리며 빨리뛰는 심장을 감추려했다.
"무슨 얘길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의외야. 자넨 군사훈련을 제일 싫어했잖나."
석진은 삐딱하게 연길 내뿜었다. 영신은 안면이 구겨지려는것을 참으며 애써 표정을 유지하려했지만 감출것도없이 선명한, 그가 제거되어야할 존재란것이 영신은 외면하듯 벌떡 일어나 이만 가봐야겠단 말도 꺼내지않았다.
"일행이 있나" 석진의 물음에 그를 본단것이 그만 그의 구두에로 시선이 갔다.
'빛깔나는 서양구두..' 영감의 말을 떠올리며 영신은 고갤들었다. 석진은 제가 뿜어낸 연기에 가려졌다나타나길 반복했다.
"자네, 매국논가?"
그 질문은 예상치못했단듯 가만 영신을 보던 석진은 갑자기 정신나간사람처럼 안면을 구기더니 끌끌끌 앞으로 몸을 숙이고선 웃기시작했다. 콜록콜록, 마른 기침을 하며 담밸 끄고선 또 한참을 끌끌끌 제 몸을 가누질못하고 미친사람처럼 웃어댔다.
아아, 제 몸을 진정시키곤 그는 도발적으로 영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자네가 보기엔 어떠한가? 내가 어느쪽일것같아?"
"그렇담, 그저께 왜 나를 찾아다닌거야?"
석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영신은 이미 나가려 돌아선 발을 꾹 붙인채 대답은 듣고가야겠단듯 석진을 바라보고있었다. 영신을 또렷히 보고있던 석진이 눈이 떼굴 굴러 그를 빗나가더니
"....글쎄, 벌써 노망이라도 든걸까."
영신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단듯 등을 돌렸다, "머무는 여관 좀 알려주게나."
그는 차갑게 어깨너머로 석진을 보았다. "전화하고싶어." 입을 꾹 다문채 망설이는가싶던 영신은 잠긴 목소리로
"...화인여관에서 내일까지 머물거야."
"알았어. 전화하지..."
영신이 떠나자 석진은 새 담밸 물고선 성냥을 켰다. 제 손안에서 타고있는 새빨간 불빛에 삼켜질듯 바라보던 그는 조심스레 불을 붙이고선 성냥을 껐다.
그의 빈 잔에는 누구의 통곡이 담겨있었다.
***
기괴한 모습이다. 경(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석진은 생각했다. 입술엔 게이샤처럼 시뻘건 칠을 해두고서 두 뺨엔 새하얗게 분칠과 연홍빛 칠을 해뒀다. 흉하다.
지금쯤 영신이는 총을 들고서 싸우고있을까, 총에 맞았을까, 하고서 그는 몸을 일으켰다. 붉은색 한복이 그의 발끝에 닿아 하늘하늘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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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덜터덜, 주점들도 문을 닫은 늦은 시각에 홀로 아무도없는 거릴 걷던 석진은 문득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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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영청 밝은 달 아래, 요정의 담에 기댄채 가만 서있는 석진은 자신을 자꾸 힐끔힐끔 보는 프랑스인을 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것이 필시 종이와 펜인데, 여장한 남성이 기괴해보이기라도 한걸까 석진은 조소를 흘리곤 다시 요정으로 들어갔다.
"왜 이제 들어와."
장교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볼때마다 강한 증오가 뿌리를 더 깊게, 가지를 더 날카롭게 뻗치는것을 느꼈다. 석진은 눈썹을 찌푸려웃고는 그의 뒤에 섰다. 그의 소매안에 감춰둔 권총의 감촉이 차가웠다.
"대한독립 만세!"
탕 탕! 술자리에 합석한 이들 중 첩자가 있었다. 그는 장교를 향해 두 번 방아쇠를 당기곤 그대로 붙잡혀 끌려나갔다.
석진은 써보지도못한 권총은 만지작거리며 혼란속에 홀로 정지되어있었다. 꺄아아악! 도망치는 이들로 정신이 없는와중에 석진의 귀에 기회를 주는듯 꺼져가는 숨소리가 들렸다.
배에서 쉴새없이 피가 흘러나와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그가 간절하게 석진을 보고있었다. 석, 진. 석, 진. 가만 듣고있자니 그 숨소리는 제 이름을 부르는것도 같았다. 그 모습을 창백하게 내려다보던 석진은 두 말없이 그에게 팔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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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
영감이 대충 두 방을 날리고선 다시 영신에게 돌아서 그와 발을 맞춰갈 사이, 석진은 그 선명한 총소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제 과거를 보았다.
---
장교를 챙기기위하여 다시 요정으로 돌아왔던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석진은 재빨리 총을 버리곤 달아났다.
***
"다나카상, 전화왔어요."
아침. 일본식 여관에서, 일본식 큼지막한 창가에 들어오는 환한 빛을 받으며 세면을 마친 영신이 얼굴에 물기를 닦다 멈칫였다.
수화기를 들고서 마냥 저를 기다리는 여관주인에게 다가가는 한걸음, 한걸음에 망설임과 조바심이 짓밟혔다.
그녀에게서 수화길 전해받고선 잠자코 그의 음성을 기다리던 영신이 눈을 깜빡이자 짧은 그의 속눈썹이 파르 떨렸다.
"...자네가 살아있단걸 안건 최근이야"
"....."
"원래는 동경에서 지냈었어, 조선으로 온건 거의 오육년만이지"
도련님, 세면을 마친 그가 돌아오지않아 나오던 영감이 그대로 멈춰섰다. 빨래를 거두던 여관주인이 둘 사이를 기이하게 쳐다보았다.
"그래서말야... .....자네 혹시 내 의뢰를 받았나?"
영신은 그게 무슨 말인가 이해가 되지않는단 얼굴로 미간을 좁힐뿐이었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석진은 망설이는가싶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얘기하자면 좀 길지만, 난 좇기고있는 신세야. 경성엔 오래 못 있어, 곧 떠날거야."
"누구에게 좇기고 있단거지?"
"얼굴은 몰라, 그러나 상대는 내 얼굴을 알아. 이러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묻힐 신세야."
"그러니까 그가 왜.."
"영신, 난 사는게 지겹지만 죽는건 두려워."
제발 의뢰를 맡았는지아닌지만 얘기해주게, 부디 나를 보내줘. 영신은 꽉 막힌 대화에 답답한듯 꾸욱 주먹을 쥐다 풀며 "최근 받은 의뢰는 서양인뿐이야. 그밖에 일본,중국인은 받더라도 조선인은 받고있지않아." 한마디 한마디, 씹어 꾹꾹참은 감정의 덩어리가 맺혀 뱉었다.
"...그렇군."
"조선은 언제 떠날 예정이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내일이든 빠르면 오늘이든 기차를 구할 예정이네"
"....일본으론 어디, 동경?"
"말해줄 수 없어"
쯧, 영신은 혀를 찼다. 그 모습을 의문스럽게 지켜보던 영감이 누군데 그리 오래 통화를 해, 다가가며 여관주인에게 소리없이 입을 뻥긋거리며 제 도련님을 가리켰다. 여관주인은 저도 모르겠다며 고갤 저었다.
"지금 밑도 끝도 없이 대뜸 좇기는 신세다, 죽임을 당할거라면서 청부업자에게 제 멱을 따란 의뢰를 받았냐 묻고.."
"난 자넬 만나서 기뻐"
"어젯밤엔 죽다 살아났다면서, 말해주긴 싫다면서..!"
"인연이 된다면 또 보겠지"
"그게 오육년에 만난 사랑하는 두사람이 하는 대화냐고..!"
영신은 석진쪽에서 전화를 끊든 상관않았다. 이미 제 쪽에선 감정이 흘러넘친 상황이었고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자넬 보고서 난 정말 죽을듯이 기뻤어, 죽은줄만 알았으니까..."
뚝. 뚝. 결국 영신은 눈물을 흘렸다, 영감이 놀라 떨어졌던 거리를 한걸음에 좁혀 다가오고, 영신은 팔로 눈물을 훔치며 수화기를 내려놨다. 영감은 고갤숙인 제 도련님을 끌어안았다.
참 오래간만에, 어렸을적 도련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영감은 말없이 그를 꼬옥 안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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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수화기를 들고있던 석진은 말없이 그것을 내려놓았다.
시를 써보는건 어때. 아직 무엇도 모르는 천진한 앳된 얼굴의 영신이 또 그 자리에서, 제 옆에 앉아, 말을 걸던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났다.
***
시끄러운 바 안, 춤을 추는 남녀 사이에서 술에 취해 서있던 석진은 문득 한 편에 자리잡은 전화기를 발견하곤 휘청 휘청,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 묘시, 동경행. 그는 망설이며 수화기를 잡지못하다 마음을 잡은듯, 수화길 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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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르릉. 따르릉. 텅 비어 보이는 여관집, 영신이 머물던 방은 이미 텅 비고 없었다. 여관주인은 급히 전화기로 뛰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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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를 든 채 말이 없던 석진은 고갤들어 천장을 가만 올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내일 동경행, 묘시야." ...
"그리고, 아직 여관에 머물러줘서 고마워."
짐을 다 싸고서 갔던 발걸음을 다시 옮겨 여관으로 돌아왔던 영신은 "막 떠나려던 참이었어." 영감을 돌아봤다. 영감이 비장한 얼굴로 고갤끄덕였다.
***
천천히 기차에 석진이 올라타고 그 옆 옆칸에 영신과 영감이 올라탔다. 석진이 자릴 찾아갈때쯤 검은 코트차림의 일본인이 섬뜩한 눈빛을 지닌채 통로를 지나갔다.
신문을 들고서 벽에기대 서있던 영신이 발을 걸자 사내가 휘청였다, 그가 돌아보려던 순간에 탕! 영감이 방아쇠를 당기고 두개골이 뚫린 남자는 주르륵, 그대로 쓰러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릴 찾은 석진은 아이를 안고있는 다소곳해보이는 여성 옆에 앉았다. 아이가 석진을 빤히 쳐다보고 "중국인?" 여자는 능숙한 상해화로 물었다. 석진은 그녀를 보려다 그녀의 아이에게로 시선이 머물었다. 음, 그는 고갤젓고선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조선인." 그도같이 상해화로 답했다.
여성과 석진이 대화를 이어갈즈음에 석진의 옆칸으로 자릴 옮긴 영신은 또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뻘쭘하게 그의 옆에 자리잡은 영감이 자기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이들을 살피곤 영신에게 속삭였다, "그럼 우리 하와이는 언제 가요?"
신문을 눈으로 읽어가던 영신이 대수롭지않게, 얼핏 여유로워 보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 때가 되면 가겠지."
영감이 미덥지않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영신은 그를 바라보며 슥 입가가 올라갔다.
***후기
화인(花荵)_꽃고비.
사실 무제로 가려던 찰나에 우연히 알게 된 꽃이었습니다... 우연찮게 일본식 이름 역시 '화인' 이다 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찾다보니 날짜별 탄생화엔 '와주세요' 라는 의미를 품고있단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죠. 뭐....
사실 결말이 매우 제가 생각하기에도 덜 끝난 기분이 듭니다, 덜 쌌어요...... 너무 광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니 멘붕이 와서 한동안 준빈...지배... 왔다갔다하다가.... 예....
외전편을 따로 쓸려합니다...블로그에..ㅎㅎ... 사실 블로그에서 연재하려 했던 글이었는데... 분명 영감님 혼잣말 하는것밖에 없던 글이 부풀어져 이렇게 되었군요......
생긴 것과 달리 '고비' 라는 이름이 참 희안하단 말을 자주 듣는 꽃처럼.. 고비가 많은 둘의 이야기를 어..하려다가... 하아..... 제가 조금 더 부지런했다면..화력이 좋았다면...(눈물)
쓰는데 참 오래잡아뒀습니다.. 이렇게까지 오래걸리고 또 도움을 구하며 의견을 듣고 수정하긴 처음입니다.
본래 김원봉X염석진으로 쓰던 글과 연관되어 문학작품이 의도치않게 많이 등장하게됐습니다.. 염석진이란 캐릭터가 원작보다 많이 변한것도 같고요.. 영화를 보면서 나름 고독과 갈등을 본 캐릭터인데 그런걸 심화시켜 다뤄주지않은 원작에 제가 발벗고 나선..커흠 컴, 뭐 항상 이런식입니다.. 좋게봐주시면 감사하죠.. 이리 길게 글을 써본것도 처음이라.. 지루하지않길. 만을 품고서 열심히 썼답니다.
_쓰는동안 썼던 후기(16.01.13.~16.02.25.)
+
사실 석진의 죽음으로 마무리 지으려했었습니다, 초반엔...ㅋㅋㅋ 갑자기 급 결말을 바꾸자! 생각에 혼란기에 접어들고...
둘이 기차역에서 만나자. 하고 영신이 오기전 먼저 도착한 청부업자를 영신인줄알고 밝게 돌아보는 석진으로 끝. 하려던게... 뭔가 다르게 이야길 풀어나가고싶어져서(그래서 외전을 싸야징 생각도 들고)...
뭐여튼 주절이 주절이가 많습니다.... 부족한 글솜씨를 끌고 참 주절주절 길게도 썼습니다...하하.....
터억. 뭔가가 제 앞의 나무상자위에 올려진게아닌가. 이건 또 무엇인가 하고 고갤 든 영감은 그만 잊고있던 제 본분을 깨달고야말았다. 구두닦이.
사내는 꽤나 비싼 서양구두를 신고서 중절모를 쓰고있었다. 눈을 보려해도 햇빛이 역광인지라 사내의 모습은 새까맣게 그림자에 가려져 형태를 가리기도 힘들었다.
"이 근방에 김영신이라고 들어보았소?"
거들먹하게 묻는 목소리는 걸걸한것이 마초냄새를 훅 풍긴다, 니미럴 눈치없는것도 다보는구만. 다들 도망가기에 정신없는 와중에 느긋하니 구두나 닦으려는 사내가 가엾어 쯧쯧 혀를 차던 영감은 구두약을 문지르다 그만 흠칫, 이곤 또 한번 사내를 쳐다본것이다.
눈. 그림자에도 가려지지않는 그 눈은 어쩐지 시푸른 불빛을 감추고있었다. "하와이 피스톨이 온다는구만!" 마침 또 무슨 우연에서인가 상점주인이 헐레벌떡 나와선 꽃바구니를 든 처자들에게 소식을 알리곤 급히 자릴 피했다.
영감의 눈동자는 그를 보다 사내에게로 굴러갔다. 꿈쩍도않는 사내에 설마, 하곤 하하, 너털웃음을 지으며 "글쎄에 여기 조선인이 한둘이 아니고.." 하며 설마 제 도련님이겐가 한심하단든 자조를 지으며 다시 구두약을 문질렀다.
"............"
영감을 응시하던 사내는 담밸 태우며 흠, 발을 바꿨다. 아직 마저 끝내지않은 상태에서 발을 바꾼 사내에 영감은 괜히 움찔이다 사내를 슥 노려보다ㅡ그역시 영감을 뚫어져라 응시하고있었다ㅡ기가 눌려 푹 숙이곤 묵묵히 구두약을 바르며 '가다가 인질이나잡혀라 요놈' 속으로 저주를 퍼부었다.
하지만 곧있으면 제 도련님이 올 시간이었다. 다급해진 영감은 저답지않게 부들부들떨리는 손을 에이, 제 스스로 욕을 하다 사내가 저를 내려다보자 그를 살피며 대충 구두를 문지르곤 어정쩡하게 끝마친것에 자신도 이상황이 매우 어색하단걸 아는지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러다 돌연 손을 내밀었다.
? 담뱃재를 털던 사내가 발을 내리며 돈을 영감 손 위에 올린다. "훠이", 영감은 돈을 쥐어 품안에 넣으며 어서 가라 손짓했다.
사내는 뭔가 이상하다 느낀듯 가지 않고 영감을 자꾸 쳐다봤다. "훠이", 영감이 또한번 손을 휘둘자 그제야 영 찝찝하단 얼굴로 뭐야, 중얼이며 떠났다.
어휴... 저게 뭐라고 저가 이리 떠는건지, 영감은 한숨놓았단듯 흐르지도않는 식은땀을 닦는 시늉을 하며 한숨을 쉬었다. "뭘 봤길래 한숨을 쉬어?"
깜짝. 영감이 고갤들자 흐뭇하게 웃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제 도련님이 걸어오고있다, 영감은 비즈니스라고 인상을 쓰며 목적지를 턱으로 가리키곤 빨리 자리를 뜨려 정리했다. "폼은", 그는 영감의 모습을 삐죽 보고는 터벅. 이내 진지한 얼굴로 술집안에 들어섰다.
탕탕. 상대가 술에 절여 누워있는덕에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시시하구만, 뒤에서 영감이 혹여나 긴장을 빡 줬던 몸에 힘을 풀며 중얼이자 그는 그를 흘긋 쳐다보곤 묵묵히 새로 장전을 했다.
"내가 오늘 별 미친놈을 봤는데말이에요, 그 미친놈이 빛깔나는 서양구두를 신고서 글쎄, 뒤에서 하와이피스톨이 온다고 그리 난리가 났구만 느긋하게 구두닦아달라고 턱. 발을 올리는게 아니에요? 허 참 별 미친놈을 다봤나..싶어 그래도 구두는 닦아줬죠"
"근데"
근데! 그 미친놈이 글쎄 도련님 이름을 부르는게 아니에요!
멈칫. 파이프를 물며 걷던 그는 걸음을 멈춰서선 영감을 쳐다봤다, "설마." 하며 웃으며 걷자, "진짜라니깐!" 영감이 흥분을 하며 소리쳤다.
"내 이름을 아는 사람들은 영감말곤 모두 죽고없어, 있어봤자 학창시절친구들뿐인데 모두 독립운동하다 죽었지."
"그게 뭐 도련님찾는거였겠습니까, 조선천지에 김영신이란 이름이 한 둘이 아니고.."
듣자하니 그것이 자신의 이름이 개나소처럼 흔하다 들려 영신이 영감을 노려보자 금방 깨갱, "아니.. 어르신이 지어주신 이름인데 물론 귀한 이름이죠." 하며 바로 꼬릴내렸다.
"그나저나 기이한 사람이네, 코쟁이놈들 구둘신은 조선인이라.."
"뻔할 뻔자로 매국노 아니겠어요"
영신이 피식웃자 영감도 그제야 긴장이 풀린듯 웃으며 거들먹거렸다, 그나저나아 오늘 사냥은 재미가 없네에 도망치지도않고 말야.
입안이 웃음을 머금고서 걸어가던 영신은 너머로 무의식적이게 고갤들다 스쳐가는 사람의 실루엣에 눈길이 멈췄다.
"난 또 총알이란 총알은 대따많이 챙겨뒀는데, 써보지도못하고 아깝게시리.. 그래도 돈을 그대로 주겠죠?"
하고 옆을 돌아보려던 영감은 저가 돌아보기도전에 튕겨져나가버린 영신에 깜짝, "도련님?" 뭐에 홀린것인냥 벌써 저 멀리까지 가있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 "도련님!" 그제야 뒤늦게 버벅거리며 발을 뗐다.
"도련님!!" 뒤에서 영감이 다급하게 저를 부르는것이 듣고는 "먼저가!!" 영신은 따라오지말라는듯 손을 저어댔다, 그러나 못들은것인지 영감은 계속해서 헐떡거리며 따라오고 뒤돌아 그모습을 확인한 영신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니 대체 뭘 보고서 저런데. 총을 너무 두둑히 챙긴것인가 한걸음 한걸음이 바닥이 꺼질듯이 무겁고, 헉헉거리며 줄줄 흐르는 땀방울이 눈앞을 흐리게 해 제 앞의 도련님이 두갈래, 세갈래 보이다 결국, 끼익 멈춰서 허헉였다. 젊네.. 젊어..
한편 머리가 휘날리며 망가질정도로 있는힘을 다해서 뛰어가던 영신은 문득 텅 빈 거리를 가로질러가는 전동차에 멈춰섰다. 저가 본 이가 그 안에 타선 뭣도모르는 얼굴로 먼 곳을 응시한채 멀어져간다, 씨.. 영신은 인상을 쓰고서 그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봤다.
"도련님!!" 죽을만치로 뛰어온것인지 빽 소리지르며 결국 녹슨것같은 제 몸을 이끌고 끝까지 뛰어온 영감이 제 앞에 서자 영신은 흐트러진 머릴 쓸어넘기며, "놓쳤어." 짜증섞인 말투를 씹어뱉었다.
"아니 대체, 헉, 누구시길래.."
영신은 또 한번, 여운이 남는지 그가 사라진 방향을 돌아봤다.
텅 빈 거리처럼 그의 마음도 따라 휑하니 허전했다.
***
파이프를 빨아들이며 여유롭게 걸어가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간 건널목쪽엔 익숙한 이가 걸어가고있었다.
'염석진..?' 그 이름이 머릿속에서 스치기도전에, 몸은 이미 튕겨져나갔었다. 알 수 없는 두통으로 시야가 어질, 심장은 빠르게 뛰어대어 정비가 덜 된 기계가 뛰듯 덜컹덜컹였다.
마냥 깨끗했던 얼굴은 콧수염이 자라 덮고있는둥 세월이 묻어난 얼굴이었지만 틀림없는 석진이었다.
"도련님."
번쩍. 잠에 들었던것인지 영신이 눈을 떴다. 영감이 심각하게 그의 옆에 앉아있는것을 괴이하게 쳐다보며 영신은 옆을 쳐다봤다.
다각 다각 다각, 말굽소리에 아늑한 공간을 보니 마차안인모양이다. "깜빡 잠에 든건가", 중얼이며 영신은 순간 너무 허전하고 허망한 속을 축이며 등을 기대는데, "도련님.." 또 한번 저를 부르는 영감의 목소리에 또 뭐냔듯 그가 바라봤다.
"어제 누구였는지 말씀 안 해주셨잖아요"
영신은 괜히 인상을 쓰며 눈을 감아버렸다. "도련님!"
"몰라 나도."
대답해주지않고 모른다 대답을 피해버리는 그에 영감은 단단히 삐친모양인지 도끼눈을 하고선 그를 쳐다봤다.
"뭐야, 그눈은?" 슬쩍 실눈을 떠보던 영신이 그모습을 보곤 묻자 흥, 그를 외면해버리며 "도련님께 실망했습니다" 란다.
그래 실망하세요. 란 듯이 영신은 똑같이 그를 외면해버리고서 꾹 눈을 감아버리자 이게 아닌데, 영감은 늘 자기 머리꼭대기에있는 제 도련님이 착잡한지 눈을 끔뻑대다 "아니 그니까 누군데 말씀안해주시냐구요..!!" 라며 개기는식으로 언성을 높혔다.
너 죽을래? 란 말이 확 보이는 표정으로 영신이 영감을 쳐다보자 깨갱, 물러나던 영감이 그럼에도 혹여나싶어 토라진 얼굴로 "정말 이러시깁니까, 우리가 일여년된것도 아니고.." 라며 웅얼여보지만 영신은 역시 꿈쩍도 않았다.
미련을 버린것인지 자신도 등을 기댄 영감은 문득 그 날의 도련님의 회상에 잠겼다.
아직도 눈 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그 등을 보며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뛰는 도련님은 처음이었지..' 생각했다.
***
담배 연기가 자욱한 좁은 가게. 뒤엔 중국인들과 프랑스인들이 아편을 피우며 취해 몽롱해져 가득한게 흡사 너구리굴이다.
기름을 발라 반질하고 곱게 뻗은 머리, 게이샤의 머릴 한 중국여성이 깊이 파인 미소를 지으며 고갤 기웃거렸다. 석진이 손가락을 접어 3을 만들자 그녀가 웃으며 뭔갈 내민다. 그것을 받곤 돌아서려던 그가 문득 멈춰서더니 그녀를 붙잡아 갑작스럽게 입을 맞췄다. 그렇게 가볍게 키스를 나누고서 그는 웃으며 가게를 나왔다.
담밸 물며 수줍게 웃던 여성을 떠올리다 피식 웃은 석진이 여성과 키스하며 슬쩍 빼온 하나를 꺼내보았다. 키스를 나누며 그녀도 눈치챈모양이지만 눈웃음을 지으며 눈감아주는것을 보니 주인몰래 저가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생각하던 석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손안에 딱 들어올만큼 작은 크기의 상자안엔 곱게 접은 종이들에 흰 가루가 들어있다. 그가 만족한듯 담밸 피우며 갑자기 써늘하고 매우 무표정한 얼굴로 연길 뱉어냈다.
아편에 취하고 취하게끔하는 골목은 시끄러운 중국인과 프랑스인들의 대화와 웃음소리로 시끌시끌, 화려한 등불아래 추하고 추하기 짝이없었다.
---
"이 근방에 하와이피스톨이 왔었다면서요?"
긴 곰방대를 뻐금거리며 흡사 조선시대 기녀들의 모습을 따라한 게이샤들이 모여 키득거린다. 붉은 입술 붉은 눈가 창백할정도로 흰 피부. 그 옆에서 인력거를 기다리며 담밸 피우고있던 석진은 그 대화를 엿들은 모양인지 흥미에 찬 얼굴로 담밸 훅 던져버리곤 연길 빨리 지우듯 손부채질을 하며 그녀들에게로 걸어다가갔다.
"하와이피스톨이 누구?"
한쪽 벽면에 손을 대고서 잔망스럽게 묻는 석진에 그녀들은 놀란듯 흠칫이다 곧 곱상한 조선인이 능숙하게 일본말을 하는것에 흥미가 끌린듯 웃으며 순순히 답했다.
"이탈리안인지, 중국인인지, 조선인이란 소문도 있고. 밤에 만나면 위험한 청부업자."
"어머 설마 모르는거야? 이 근방에선 유명한걸"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생긋 웃던 석진은 금방 식은 표정으로 귀를 후비다 손가락을 털며 그녀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만들고선 상체를 들이밀며 조선인? 이라며 되물었다.
"....우리도 자세히는 몰라, 만나본적도 없는걸."
"만났으면 지금 여기 없겠지."
석진은 알아들어먹었단듯 툭, 고갤 떨구고선 비틀비틀 다시 저가 서있던곳으로 걸어갔다. 뭐야? 그녀들이 이상하게 불쾌했던 그를 힐끔이며 수근거리자 석진은 새로 담배를 물며 그녀들을 향해 빙긋. 웃어보였다.
***
'죽을지도 몰라.'
창 밖엔 비가 내린다. 기차에 앉아 생각에 잠긴듯 비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던 영신은 바로 제 귓가에대고 속삭인듯 생생한 목소릴 떠올렸다.
"아직도, 어제 일 때문에 그리 뚱해있는거에요?"
도련님 이상하네에, 이런 모습도 있었어? 영감이 일부로 장난도 걸어보지만 도통 도련님의 안면에 씌인 그늘은 걷히질않는다.
"영감, 죽은줄알았던 사람이 눈앞에 나타나면 어떨거같아?"
"귀신인가 의심하겠죠"
"귀신이 아닌게 확실하면"
"그면 죽지않고 살았는갑다하겠죠, 왜요?"
음. 영신은 끄덕거리며 "아냐 됐어." 라며 다시 고갤돌렸다.
"혹시 어제 본 그 분이.."
도련님이 대답이 없다 아-. 깨달은 듯 영감은 "허헝, 그거 귀신이 곡할 노릇이겠네요 죽은줄알았던 동창이 살아있다라.." 라며 힐긋 제 도련님을 살폈다. 그가 한숨을 쉬며 말이 없자 오호라, 바로 감을 잡은 듯 소리없는 환호성을 질렀다.
"....근데 왜, 경성엘 왔을까..."
***
시끄러운 기차역. 길을 묻고나서 덩그러니 서있는 제 도련님에게로 다시 걸어가던 영감은 문득 써늘한 기분에 고갤돌렸다.
말끔한 얼굴에 중절모. 익숙치않은 얼굴이지만 분위기가 어디서봤다.. 하고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결정적으로 사내의 구두를 보고선 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영감." 도련님이 저를 부르자, 아, 예에. 대답하며 그가 사내를 곁눈질하며 슬금슬금 도련님에게로 걸어갔다.
"거기 서서 뭐해"
"아, 아니이.. 그 남자가.."
"오늘 갈 곳은 요정이라고했나? 시끌벅쩍하겠네"
"아니...그가.."
"어물쩡거릴 시간없어, 빨리 가자고"
"아니 그게 아닌데..."
영감은 죽겠단 표정으로 제 도련님을 쳐다보다 먼저 가버리는 그에 아, 급히 뒤를 돌아보지만 이미 가고없는 사내에 어쩌지, 눈을 끔뻑대다 결국 제 도련님 뒤를 따라 총총 뛰어갔다.
***
가야금의 가 자도 모르는 게이샤들이 엉거주춤 흉내를 내듯 가야금을 뜯는다. 발가벗어 흰 몸이 훤히 드러난 게이샤들이 한 명씩 안겨 앓는 소릴내고 그 속에서 같이 웃통을 벗은 석진이 술잔만 비우며 일이라 이야 중얼였다.
"이보게 석진, 그러지 말고 자네도"
저를 어떻게 해보려는것인지 제 손을 잡으며 웃는 일본인사내에 스륵, 손을 빼낸 석진이 그의 손에 빈 잔을 쥐어주곤 술병을 게이샤에게 내밀어 따르라 턱짓했다.
"비싸게도 구는군" 맘에 안든단듯 그가 중얼이는것이 귀에 들어왔지만 석진은 헛웃음을 지으며 잔을 비울 뿐이었다. '뭘 알지도 못하는게', 그는 정말 뜯을줄만아는지 가야금을 뜯는 여성을 흘긋이며 빈웃음을 지어보였다. '난장판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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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허.. 멀찌감치서서, 요정을 바라보던 영감은 부둥켜안고 민망한 짓꺼릴하는 남녀를 보며 헛웃음을 짓고선 큼큼, 금방 표정을 지우며 터벅터벅 문앞을 지키는 사내에게로 걸어갔다.
그가 영감을 불쾌하자보자 영감이 무뚝뚝하게 종이를 내민다. '하와이피스톨.'
히이이익. 그가 놀라 물러나자 그 뒤로 "뭐야? 뭔일이야?"라며 눈이 짝 찢어진 악독해보이는 일본인이 나왔다. "하와이피스톨?" 그가 바로 무언가 행하려자, 철컥. 언제 온것인지 영감옆에선 영신의 손에 들린 총의 차가운 총구가 그의 머리에 닿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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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 들은 게이샤가 비명을 지르려자 쉬. 금방 다른 게이샤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조용 조용히,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냔듯 요정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대피했다.
방에서나와 담밸 피우려던 석진은 문득 하나둘씩 살금살금 겁에질려 요정을 나가는것을 발견하곤 이상한것을 눈치채곤 담밸 뱉으며 몸을 움직이려는데 덥석, 그가 깜짝 뒤를 돌아보자 저를 붙잡은 손의 주인인 아까 가야금을 뜯던 젊은 게이샤가 침착한 얼굴로 서있었다.
"대피하세요. 되도록이면, 빨리."
"무슨일이야."
"하와이피스톨이에요. 어서 도망가요."
그러며 그녀는 석진을 이끌고 맨발로 요정을 나갔다. 어리둥절해져선 그녀에게 끌려나온 석진은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옷고름을 정리했다.
"당신, 조선인이죠."
옷고름을 정리하던 석진의 손이 멈칫, 그래서 뭐. 란 얼굴로 그녀를 무뚝뚝하게 쳐다봤다.
"하와이피스톨은 조선인에게도 자비없어요.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은 모두 죽어요."
"잠깐, 그 얘긴 그가 조선인이기라도한단건가?"
그녀는 주저하는듯보이다 곧 고갤끄덕였다.
"그의 얼굴을 봤던 게이샤가 말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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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거 열심히 일하고계신데, 미안하구만"
꺄악! "넌 뭐야?" 영감을 보며 인상을 쓰던 일본인 품안에 안겨있던 게이샤가 벌떡 일어나 몸을 추스릴새도없이 도망쳤다. "뭐하는놈이냐고!" 그가 칼을 쥐며 묻자 "허허, 그걸로 뭐 어쩌실려고" 하며 영감이 느긋하게 총을 꺼내보였다.
그 뒤로 영신이 섬뜩하게 걸어들어온다. 뭔가 이상하단걸 느낀듯 그가 도망치려하지만 금방 주저앉고서 살려줘..! 소리쳤다.
"으아아아!" 벽뒤에 숨어있던 남자가 검을 들고서 달겨들지만 텅! 묵직한 소리와함께 가슴이 뻥 뚫려선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쯧쯧쯧, 혀를 차곤 영감은 주저앉은 남자에게로 다가가 쭈구려앉는데 "에, 뭐야." 그가 벌떡 일어났다. "뭐야아" 영감이 손사레를 치며 물러나자 주저앉은 남자에게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영신의 눈에 들어왔다. "지렸네, 지렸어." 못 볼꼴을 봤단 듯 중얼이는 영감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영신의 탕. 방아쇠가 당겨졌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이었지만 영감은 이젠 무덤덤해진듯 자신의 눈앞에 눈을 퍼렇게 뜨고서 쓰러진 남자를 내려다보고선 죽었나? 살폈다.
---
"요새 이상하게 일이 심심하게 풀리네, 빨리 하와이에 가란 계신가?"
걸어나오며 기이하단 얼굴로 중얼이자 한발자국 뒤에서 걷던 영신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것을 본 영감이 놀란듯 두어번 그것을 흘긋이다 "잘 풀리면 좋은거지" 중얼거리며 제 입도 같이 올라가선 가볍게 계단을 내려가더니 "아, 느낌이 좋네,좋아." 라며 뒤돌아 제 도련님 얼굴을 또 보고선 "술술 풀리네 술술 풀려" 또 빙긋 웃는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치자 보이는 눈.
수풀속에 숨은 석진이 쉬-. 제게 뭐라려는 게이샤의 입을 막으며 그들을 몰래 염탐했다.
"하와이가면 이제 뭐하고살죠?"
"뭐하긴, 먹고자고싸는거지 뭘."
"히야, 천국이네 천국"
금방 언제그랬냔듯 영신의 얼굴에도 미소가 돈다, 그것을 지켜보는 석진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러다 들켜요..!" 게이샤가 속삭이지만 그는 들리지않는지 더욱 또렷하게 그를 쳐다봤다.
휙, 돌연 영신이 뒤를 돌아본다. "왜요, 쥐새끼에요?" 라며 탕. 영감이 방아쇠를 당겼다. "...." 한곳을 계속 응시하던 영신이 잘못느낀건가, 하고 다시 돌아서자 탕 탕, 두어번 더 방아쇠를 당기곤 아쉬운 얼굴로 쩝, 영감도 돌아섰다.
게이샤의 입을 최대로 막고있던 석진은 두사람의 발걸음이 아에 들리지않자 비로소 손을 풀었다.
석진의 눈이 푸르슴한 빛을 머금고서 반짝였다. 게이샤가 수풀에서 달아난후에도 그는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있었다.
***
"ただいるだけで
그냥 있는 것만으로
あなたがそこにただいるだけで
당신이 거기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
その場の空気があかるくなる
그 곳의 공기가 맑아진다.
あなたがそこにただいるだけで
당신이 거기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
みんなのこころがやすらぐ
모두의 마음이 평온해진다
そんなあなたに
그런 당신처럼
わたしもなりたい" (ただいるだけで, 아이다 미츠오)
나도 되고싶다
벤치에 앉아 하늘의 끝을 바라보던 석진은 나긋하지만 낮고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갤돌렸다. 저와같은 교복차림의 남학생이 슬쩍 저를 보곤 능글하게 웃는다, 석진은 고갤돌리지만 상대는 어느새 그의 쪽으로 다가와 손을 뻗어 벤치를 짚고 앉으며 "일본인?" 능숙한 일본말을 뱉었다.
피식. 석진은 무언갈 생각하는듯 하늘을 올려다보다 부러 인상을 쓰더니 고갤 내려 그를 보며 상해말로, "훌륭한 시네" 부러 중국인같이 손을 모아 흉내까지 내곤 목소리를 끌어 굵직히 말했다.
한쪽다릴 허벅지에 올리곤 앉은 남학생은 조금 당황한것인지 몸을 꼼지락거리더니 입술을 다물었다띄우며, "중국인이었나" 실망한듯 한국말을 중얼인다. 석진은 그런 모습을 능청스럽게 바라보다 돌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켜며 "아아 좋다." 하며 들으란듯 크게 한국말을 뱉었다. 그가 석진을 기이하게 쳐다보자 석진은 그를 돌아보더니 능청스레 으쓱이며 "뭐하는가, 곧있으면 수업시간이네" 하며 주섬 제 옷을 챙겨 언덕을 내려갔다.
***
수업시간에 내내 손등에 뺨을 묻고서 영신은 진지한 얼굴로 칠판을 보며 수업에 집중해있는 석진을 지켜봤다. 조금 어려운지 연필을 입에 물고서 고민하는것처럼 보이던 그가 시선을 느낀듯 제 쪽으로 고갤돌리자, 깜짝 했지만 괜히 놀라지않은듯 영신은 굳어서 눈썹만 꿈틀였다. 석진이 그 모습을 가늘게 눈을 뜨고서 쳐다보는데 갑자기 영신앞을 누가 가린다.
퍽! 묵직한 소리와함께 볼이 빨게진 영신이 넋이나가선 눈을 깜빡인다. 다시 수업을 이어가며 칠판앞으로 나간 선생이 석진에게도 경고의 눈빛을 보낸다, 석진은 곧바로 정자세로 칠판을 본다. ..그러다가도 슬쩍, 영신을 봤다. 맞은 뺨쪽을 감싸괜채 책을 내려다보던 영신의 눈이 석진에게 굴러갔다, 석진은 휙 다시 칠판에로 돌아갔다. 영신은 그런 석진은 또 빤히 바라만봤다.
---
시끄러운 바 안에서 술을 마시던 영신은 잠깐 멍을 때렸던것인지 눈을 깜빡였다. 저와 시선을 맞추는 춤을 추는 여인보며 헤실헤실웃는 영감이 옆에 서있고, 맥주잔을 내려놓은 영신은 착잡한지 고갤숙인채 한숨을 쉬었다. 영감이 그를 쳐다보자 영신은 벌떡, 일어나 비틀비틀 걸어나갔다. 어디가냔듯 영감이 목을 빼고 쳐다보자 영신은 별거아니란듯 손을 저었다.
어엉.. 왜 저런대.. 멀어져가는 제 도련님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영감은 갑자기, 제 시야를 가리듯 나타난 여성에 "아 깜짝이야," 말을 뱉곤 어, 어어.. 어색하게 웃음을 흘리며 저를 보곤 웃는 여성과 부끄러운지 시선을 못맞추고 힐끔거리며 그나마 알고있는 일본말을 내뱉었다, "오하요.. 오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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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에 불을 붙이며 걷던 영신은 갑자기 저와 부딪힌 사내에, 움찔였다. 얼굴을 확인할 새도없이 떨어뜨린 상자를 집으려 몸을 숙인 사내에 사과도 않는 그를 불쾌하게 내려다보며 지나치려던 영신은 멈칫, 갑자기 고갤돌렸다. 상자를 품속에 넣으며 대수롭지않게 고갤들던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리며 "염석진..!" 이름을 불렀다. 눈을 동그랗게뜨던 사내가 방긋 웃는다, "오래간만일세"
"오래간만이고말고..!"
굳은듯이 서있는 석진과달리 영신은 덥석 금방 그를 끌어안았다. 안긴채로 석진이 곤란한듯 찡그려웃으나 "그래 오랜만이야," 라며 편한 웃음을 흘렸다.
떨어지며 차가운 두 손이 제 뺨을 감싸며, 어느새 붉게 충혈된 영신의 두 눈을 보곤 스륵 웃음기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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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꽃처럼 곱게 피어 가는 화로에 숯불,
입춘 때 밤은 마른 풀 사르는 냄새가 난다.
한겨울 지난 석류 열매를 쪼개어
홍보석 같은 알을 한 알 두 알 맛보노니.
투명한 옛 생각, 새론 시름의 무지개여
금붕어처럼 어린 녀릿녀릿한 느낌이여.
이 열매는 지난해 시월 상달, 우리 둘의
조그마한 이야기가 비롯될 때 익은 것이어니.
작은 아씨야, 가녀린 동무야, 남몰래 깃들인
네 가슴에 졸음 조는 옥토끼가 한 쌍.
옛 못 속에 헤엄치는 흰 고기의 손가락, 손가락
외롭게 가볍게 스스로 떠는 은실, 은실,
아아 석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신라 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석류, 정지용)
장소를 옮겨, 주변에 주점으로 들어간 영신은 마주보고 앉은 석진의 얼굴을 호수를 내려다보듯이 관찰했다. 반짝거리는 석진의 눈은 아무런 감정도 새어보이지않아 그것을 이상하다, 보는 그 모습엔 어린아이처럼 의문스러움과 왠지모를 순진함이 겻들어있다.
석진의 눈이 일렁 일렁, 희미해져가더니 서서히 눈을 감은 형태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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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 책상을 내리 친 얇은 나무막대기가 부러질것만같은 소리. 석진은 몸을 흠칫이며 고갤 들었다. 사나운 인상의 일본인선생이 그를 못마땅찮게 쳐다보다 그 옆의 학생에게 괜히 짝! 휘둘러갈궜다. 윽! 그가 몸을 가누지못하고 휘청거리자, "이 자식이" 선생은 다짜고짜 그를 발로 짓밟아댔다. 부들부들떨며 차마 제 옆을 보지못하는 석진이 지긋한 시선이 느껴져 고갤 든다.
벽에 등을 기댄채 저와 마주보게 선 쪽에서 영신이 무뚝뚝한 얼굴로 동급생이 바닥에 깔린채 무참히 짓밟히는것을 바라보고있었다. "질척질척한 조선인! 짓밟아줘야 정신을 차리지!"
흥, 선생은 발길질을 거두곤 천으로 피묻은 제 신발을 문질러닦으며 슬쩍 석진을 흘겼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영신의 눈에 살기가 머물렀다.
---
"우리도 머지않아 징병에 끌려가게될거야"
영신은 말없이 제 신을 굳게 묶을 뿐이었다. 석진은 말없이 영신의 시를 읽고 또 읽을 뿐이었다. 영신은 발을 내리곤 고갤들어 석진을 보고선 그의 손아귀에서 종이를 빼앗으려다, 석진의 움켜쥠에 덜컥 멈췄다.
"이 시, 나 줘."
"왜?"
"왜긴, 너 보고 싶을 때마다 읽을려그런다"
"......"
왜 무슨 다신 안 볼 사람처럼 그래, 말이 나오려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쿡 발목이 잡혀선 말문이 막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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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 교탁을 부술듯이 휘두는 몽둥이. 일제히 허릴 90도로 숙이고서 공포에 떨고있었다, 영신 역시 아래입술을 꽉 깨문채 아무리 힘을 줘보아도 다리는 말을 안 듣고 자꾸 벌벌벌 떨었다.
"죽을지도 몰라."
담담한 목소리, 영신은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학생들을 잡아오는 군인들의 군화소리와 벌벌떠는 이들의 신음소리로 혼잡했지만 그 목소리는 제 귀에 속삭인듯 선명했다.
아니야, 영신이 입을 벌리려는 순간 큼지막한 손이 밀리지않은 석진의 머릴 움켜쥐고서 그 속에서 끄집어냈다. 아까부터 머릴 밀지않아 눈에띄는 영신과 석진을 유심히 보고있던 군인이었다. 그가 영신 역시 끌고가려 손을 뻗으려자 그의 옆에 군인이 서둘러 그의 귓가에 뭐라 중얼이는것을 듣곤 흠, 영신을 못본 체 지나갔다.
그 군인이 무어라 중얼였을진 저는 알 것같았다, 필시 제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일것이다. 영신은 그저 천근같이 무거운 발을 떼지못하고 그자리에서 우두커니 서선 끌려가는 석진을 허망하게 바라봤다, "고개 숙여!" 소리침에 강제로 뒷덜미가 붙잡혀 고갤 숙이니 그제서야 울컥 눈물이 났다.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얼마나 두려움에 떨고있는지가 보여서, 영신은 눈물을 흘리지도 못하고 속으로 엉엉 울었다.
끌려가던 석진이 자꾸 뒤를 돌아보려했던탓에 "가만히 좀 있어!" 절 잡고있던 군인에게 따귀를 갈궜다. 무심코 그를 지나치던 장교가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등을 돌렸다.
"어이 거기!" 그의 옆으로 곧장 달려온 멸치같은 일본인이 석진을 잡고있는 군인을 불러세웠다. 석진은 핏줄이 터져 붉은 피가 번지는 벌건 눈을 치켜떠 장교를 올려다봤다.
---
"난 자네가 죽은 줄 알았어."
석진은 과거회상을 접곤 눈앞에 보이는 그저 영혼없이 제 앞의 맑은 술잔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죽다 살아났었지. 자네에겐 별로 해주고싶지않은 이야기야."
그러며 쭉, 잔을 비웠다.
세상이 바뀌면서 사람도 따라 바뀌었다면 이건 참 완전히 다른 사람같네.. 영신의 시선은 석진에게 고정된채 그도 따라 잔을 비웠다.
"너 내가 줬던 시,"
"연필을 쥐던 손으로 사람을 잡으니 감회가 좀 새롭나?"
무덤덤하니 고갤숙이고있던 영신이 번득 그를 노려봤다. 눈빛엔 미처 감출새도없이 당장이라도 무신경하게 총을 갈굴것같은 살기가 들려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어찌 알았느냐는 얼굴이기에 석진은 싸늘한 얼굴로 그런 영신의 얼굴을 하나 하나 눈에 담아뒀다 이윽고 입을 열었다.
"...긴장할거없어, 소문낼 생각도 없으니말야"
석진은 건조하게 담밸 물고서 불을 붙이곤 영신에게서 시선을 치웠다. 허리춤에 걸려있는 총이 느껴졌다. 영신은 탁자위에 두 팔을 올리며 빨리뛰는 심장을 감추려했다.
"무슨 얘길 하는건지, 잘 모르겠어"
"의외야. 자넨 군사훈련을 제일 싫어했잖나."
석진은 삐딱하게 연길 내뿜었다. 영신은 안면이 구겨지려는것을 참으며 애써 표정을 유지하려했지만 감출것도없이 선명한, 그가 제거되어야할 존재란것이 영신은 외면하듯 벌떡 일어나 이만 가봐야겠단 말도 꺼내지않았다.
"일행이 있나" 석진의 물음에 그를 본단것이 그만 그의 구두에로 시선이 갔다.
'빛깔나는 서양구두..' 영감의 말을 떠올리며 영신은 고갤들었다. 석진은 제가 뿜어낸 연기에 가려졌다나타나길 반복했다.
"자네, 매국논가?"
그 질문은 예상치못했단듯 가만 영신을 보던 석진은 갑자기 정신나간사람처럼 안면을 구기더니 끌끌끌 앞으로 몸을 숙이고선 웃기시작했다. 콜록콜록, 마른 기침을 하며 담밸 끄고선 또 한참을 끌끌끌 제 몸을 가누질못하고 미친사람처럼 웃어댔다.
아아, 제 몸을 진정시키곤 그는 도발적으로 영신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자네가 보기엔 어떠한가? 내가 어느쪽일것같아?"
"그렇담, 그저께 왜 나를 찾아다닌거야?"
석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영신은 이미 나가려 돌아선 발을 꾹 붙인채 대답은 듣고가야겠단듯 석진을 바라보고있었다. 영신을 또렷히 보고있던 석진이 눈이 떼굴 굴러 그를 빗나가더니
"....글쎄, 벌써 노망이라도 든걸까."
영신은 더 들을 가치도 없단듯 등을 돌렸다, "머무는 여관 좀 알려주게나."
그는 차갑게 어깨너머로 석진을 보았다. "전화하고싶어." 입을 꾹 다문채 망설이는가싶던 영신은 잠긴 목소리로
"...화인여관에서 내일까지 머물거야."
"알았어. 전화하지..."
영신이 떠나자 석진은 새 담밸 물고선 성냥을 켰다. 제 손안에서 타고있는 새빨간 불빛에 삼켜질듯 바라보던 그는 조심스레 불을 붙이고선 성냥을 껐다.
그의 빈 잔에는 누구의 통곡이 담겨있었다.
***
기괴한 모습이다. 경(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모습을 보고서 석진은 생각했다. 입술엔 게이샤처럼 시뻘건 칠을 해두고서 두 뺨엔 새하얗게 분칠과 연홍빛 칠을 해뒀다. 흉하다.
지금쯤 영신이는 총을 들고서 싸우고있을까, 총에 맞았을까, 하고서 그는 몸을 일으켰다. 붉은색 한복이 그의 발끝에 닿아 하늘하늘거렸다.
---
터덜터덜, 주점들도 문을 닫은 늦은 시각에 홀로 아무도없는 거릴 걷던 석진은 문득 까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요정의 담에 기댄채 가만 서있는 석진은 자신을 자꾸 힐끔힐끔 보는 프랑스인을 보았다. 그의 손에 들린것이 필시 종이와 펜인데, 여장한 남성이 기괴해보이기라도 한걸까 석진은 조소를 흘리곤 다시 요정으로 들어갔다.
"왜 이제 들어와."
장교의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를 볼때마다 강한 증오가 뿌리를 더 깊게, 가지를 더 날카롭게 뻗치는것을 느꼈다. 석진은 눈썹을 찌푸려웃고는 그의 뒤에 섰다. 그의 소매안에 감춰둔 권총의 감촉이 차가웠다.
"대한독립 만세!"
탕 탕! 술자리에 합석한 이들 중 첩자가 있었다. 그는 장교를 향해 두 번 방아쇠를 당기곤 그대로 붙잡혀 끌려나갔다.
석진은 써보지도못한 권총은 만지작거리며 혼란속에 홀로 정지되어있었다. 꺄아아악! 도망치는 이들로 정신이 없는와중에 석진의 귀에 기회를 주는듯 꺼져가는 숨소리가 들렸다.
배에서 쉴새없이 피가 흘러나와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그가 간절하게 석진을 보고있었다. 석, 진. 석, 진. 가만 듣고있자니 그 숨소리는 제 이름을 부르는것도 같았다. 그 모습을 창백하게 내려다보던 석진은 두 말없이 그에게 팔을 뻗었다.
---
탕!
영감이 대충 두 방을 날리고선 다시 영신에게 돌아서 그와 발을 맞춰갈 사이, 석진은 그 선명한 총소리에서 돌이킬 수 없는 제 과거를 보았다.
---
장교를 챙기기위하여 다시 요정으로 돌아왔던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석진은 재빨리 총을 버리곤 달아났다.
***
"다나카상, 전화왔어요."
아침. 일본식 여관에서, 일본식 큼지막한 창가에 들어오는 환한 빛을 받으며 세면을 마친 영신이 얼굴에 물기를 닦다 멈칫였다.
수화기를 들고서 마냥 저를 기다리는 여관주인에게 다가가는 한걸음, 한걸음에 망설임과 조바심이 짓밟혔다.
그녀에게서 수화길 전해받고선 잠자코 그의 음성을 기다리던 영신이 눈을 깜빡이자 짧은 그의 속눈썹이 파르 떨렸다.
"...자네가 살아있단걸 안건 최근이야"
"....."
"원래는 동경에서 지냈었어, 조선으로 온건 거의 오육년만이지"
도련님, 세면을 마친 그가 돌아오지않아 나오던 영감이 그대로 멈춰섰다. 빨래를 거두던 여관주인이 둘 사이를 기이하게 쳐다보았다.
"그래서말야... .....자네 혹시 내 의뢰를 받았나?"
영신은 그게 무슨 말인가 이해가 되지않는단 얼굴로 미간을 좁힐뿐이었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는 석진은 망설이는가싶더니 이내 다시 말을 이어갔다.
"얘기하자면 좀 길지만, 난 좇기고있는 신세야. 경성엔 오래 못 있어, 곧 떠날거야."
"누구에게 좇기고 있단거지?"
"얼굴은 몰라, 그러나 상대는 내 얼굴을 알아. 이러다간 쥐도새도 모르게 묻힐 신세야."
"그러니까 그가 왜.."
"영신, 난 사는게 지겹지만 죽는건 두려워."
제발 의뢰를 맡았는지아닌지만 얘기해주게, 부디 나를 보내줘. 영신은 꽉 막힌 대화에 답답한듯 꾸욱 주먹을 쥐다 풀며 "최근 받은 의뢰는 서양인뿐이야. 그밖에 일본,중국인은 받더라도 조선인은 받고있지않아." 한마디 한마디, 씹어 꾹꾹참은 감정의 덩어리가 맺혀 뱉었다.
"...그렇군."
"조선은 언제 떠날 예정이야"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내일이든 빠르면 오늘이든 기차를 구할 예정이네"
"....일본으론 어디, 동경?"
"말해줄 수 없어"
쯧, 영신은 혀를 찼다. 그 모습을 의문스럽게 지켜보던 영감이 누군데 그리 오래 통화를 해, 다가가며 여관주인에게 소리없이 입을 뻥긋거리며 제 도련님을 가리켰다. 여관주인은 저도 모르겠다며 고갤 저었다.
"지금 밑도 끝도 없이 대뜸 좇기는 신세다, 죽임을 당할거라면서 청부업자에게 제 멱을 따란 의뢰를 받았냐 묻고.."
"난 자넬 만나서 기뻐"
"어젯밤엔 죽다 살아났다면서, 말해주긴 싫다면서..!"
"인연이 된다면 또 보겠지"
"그게 오육년에 만난 사랑하는 두사람이 하는 대화냐고..!"
영신은 석진쪽에서 전화를 끊든 상관않았다. 이미 제 쪽에선 감정이 흘러넘친 상황이었고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자넬 보고서 난 정말 죽을듯이 기뻤어, 죽은줄만 알았으니까..."
뚝. 뚝. 결국 영신은 눈물을 흘렸다, 영감이 놀라 떨어졌던 거리를 한걸음에 좁혀 다가오고, 영신은 팔로 눈물을 훔치며 수화기를 내려놨다. 영감은 고갤숙인 제 도련님을 끌어안았다.
참 오래간만에, 어렸을적 도련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영감은 말없이 그를 꼬옥 안고있었다.
---
여전히 수화기를 들고있던 석진은 말없이 그것을 내려놓았다.
시를 써보는건 어때. 아직 무엇도 모르는 천진한 앳된 얼굴의 영신이 또 그 자리에서, 제 옆에 앉아, 말을 걸던 모습이 눈 앞에 나타났다.
***
시끄러운 바 안, 춤을 추는 남녀 사이에서 술에 취해 서있던 석진은 문득 한 편에 자리잡은 전화기를 발견하곤 휘청 휘청,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일 묘시, 동경행. 그는 망설이며 수화기를 잡지못하다 마음을 잡은듯, 수화길 집었다.
---
따르릉. 따르릉. 텅 비어 보이는 여관집, 영신이 머물던 방은 이미 텅 비고 없었다. 여관주인은 급히 전화기로 뛰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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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기를 든 채 말이 없던 석진은 고갤들어 천장을 가만 올려다보다 입을 열었다. "내일 동경행, 묘시야." ...
"그리고, 아직 여관에 머물러줘서 고마워."
짐을 다 싸고서 갔던 발걸음을 다시 옮겨 여관으로 돌아왔던 영신은 "막 떠나려던 참이었어." 영감을 돌아봤다. 영감이 비장한 얼굴로 고갤끄덕였다.
***
천천히 기차에 석진이 올라타고 그 옆 옆칸에 영신과 영감이 올라탔다. 석진이 자릴 찾아갈때쯤 검은 코트차림의 일본인이 섬뜩한 눈빛을 지닌채 통로를 지나갔다.
신문을 들고서 벽에기대 서있던 영신이 발을 걸자 사내가 휘청였다, 그가 돌아보려던 순간에 탕! 영감이 방아쇠를 당기고 두개골이 뚫린 남자는 주르륵, 그대로 쓰러졌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릴 찾은 석진은 아이를 안고있는 다소곳해보이는 여성 옆에 앉았다. 아이가 석진을 빤히 쳐다보고 "중국인?" 여자는 능숙한 상해화로 물었다. 석진은 그녀를 보려다 그녀의 아이에게로 시선이 머물었다. 음, 그는 고갤젓고선 부드러운 미소를 짓더니, "조선인." 그도같이 상해화로 답했다.
여성과 석진이 대화를 이어갈즈음에 석진의 옆칸으로 자릴 옮긴 영신은 또 자리에 앉아 신문을 펼쳤다. 뻘쭘하게 그의 옆에 자리잡은 영감이 자기들을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 이들을 살피곤 영신에게 속삭였다, "그럼 우리 하와이는 언제 가요?"
신문을 눈으로 읽어가던 영신이 대수롭지않게, 얼핏 여유로워 보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글쎄, 때가 되면 가겠지."
영감이 미덥지않은 얼굴로 그를 쳐다보자 영신은 그를 바라보며 슥 입가가 올라갔다.
***후기
화인(花荵)_꽃고비.
사실 무제로 가려던 찰나에 우연히 알게 된 꽃이었습니다... 우연찮게 일본식 이름 역시 '화인' 이다 라는 설명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찾다보니 날짜별 탄생화엔 '와주세요' 라는 의미를 품고있단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운이 좋았죠. 뭐....
사실 결말이 매우 제가 생각하기에도 덜 끝난 기분이 듭니다, 덜 쌌어요...... 너무 광대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다보니 멘붕이 와서 한동안 준빈...지배... 왔다갔다하다가.... 예....
외전편을 따로 쓸려합니다...블로그에..ㅎㅎ... 사실 블로그에서 연재하려 했던 글이었는데... 분명 영감님 혼잣말 하는것밖에 없던 글이 부풀어져 이렇게 되었군요......
생긴 것과 달리 '고비' 라는 이름이 참 희안하단 말을 자주 듣는 꽃처럼.. 고비가 많은 둘의 이야기를 어..하려다가... 하아..... 제가 조금 더 부지런했다면..화력이 좋았다면...(눈물)
쓰는데 참 오래잡아뒀습니다.. 이렇게까지 오래걸리고 또 도움을 구하며 의견을 듣고 수정하긴 처음입니다.
본래 김원봉X염석진으로 쓰던 글과 연관되어 문학작품이 의도치않게 많이 등장하게됐습니다.. 염석진이란 캐릭터가 원작보다 많이 변한것도 같고요.. 영화를 보면서 나름 고독과 갈등을 본 캐릭터인데 그런걸 심화시켜 다뤄주지않은 원작에 제가 발벗고 나선..커흠 컴, 뭐 항상 이런식입니다.. 좋게봐주시면 감사하죠.. 이리 길게 글을 써본것도 처음이라.. 지루하지않길. 만을 품고서 열심히 썼답니다.
_쓰는동안 썼던 후기(16.01.13.~16.02.25.)
+
사실 석진의 죽음으로 마무리 지으려했었습니다, 초반엔...ㅋㅋㅋ 갑자기 급 결말을 바꾸자! 생각에 혼란기에 접어들고...
둘이 기차역에서 만나자. 하고 영신이 오기전 먼저 도착한 청부업자를 영신인줄알고 밝게 돌아보는 석진으로 끝. 하려던게... 뭔가 다르게 이야길 풀어나가고싶어져서(그래서 외전을 싸야징 생각도 들고)...
뭐여튼 주절이 주절이가 많습니다.... 부족한 글솜씨를 끌고 참 주절주절 길게도 썼습니다...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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