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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15


내가 나와 정반대인 사람에게 사랑에 빠졌다라 말한다면,
카페에 있는 모두가 고개조차 돌리지 않는 심심한 말로 나는 홀로 떠들고 있지 모르겠다.

바텐더는 다른 이의 고민을 들어주느라 내게 등을 보일거며 레코드판이 그윽 그윽 돌아가며 영원히 멈추지 않을 노래에 사람들은 이 순간이 멈추지 않을 듯이 영원토록 춤을 추겠지.

내가 나와 정반대인 사람에게 사랑에 빠졌다라하면,
고통 끝에 자결을 결심하신 어머니께서 웃으며 돌아보실까.

누군가의 정신을 끌어들일 듯이 돌아가는 사람들, 전등 빛, 음악, 발소리, 하하호호 영원할 것 같은 웃음소리들. 그러나 결국 카페에 불이 꺼지고 험악한 틀만 남게 된다면 모두가 사라지고 발길조차 들이지 않을 그러한 곳.

그러한 관계. 세상은 미쳐 돌아가고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동료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혹시라도 정에 이끌려,
옛적 감정에 미련이 남아 그 빈 터로 돌아오게 된다면 당신은 차가운 쇠총알에 머리가 뚫려 빈 터를 장식하거나,
결국 아무것도 남지않은.. 허전한 그 공간에서 홀로 미아가 되어버리던지,
결국엔 모두가 재가 되버리는 세상 이 순간을 즐기자며 얕은 광기와, 슬픔이 젖어나오는 웃음소리들에 현혹된 듯 그 소리가 귀에 자꾸 맴돌겠지.

결국엔 그리 외면하고 발버둥쳐도 벗어나지질 않는 진실. 결국엔 나 혼자란 것을 확인당할 수 밖에 없는거다.




옥윤은 자꾸 뒤를 돌아보고 두리번거리는 영신을 안정시키려는듯 아까부터 부드럽게 미소짓고 있었다. 그런 그녀와 눈이 마주치면 영신은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산만했던 자신을 가라앉혔다.

마침,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고 그는 곧 의자에 앉아 식탁에 팔을 올리고선 영신을, 그러나 곧 옥윤에게 고갤돌려 미소지었다.


"저희랑 같은 떠돌인데, 저희랑 목적지가 같아요."

"경성?"

"네."


대화는 글로 써선 딱딱한 존대와 지위와 나뉘어진 직장의 느낌이 나지만 둘의 대화모습을 눈앞에서 보고있다면 그런 딱딱한 분위기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석진은 옥윤이 이야기할때면 그녀와 눈을 맞추려했고 그녀의 이야기를 쭉 관심있게 들어주고 귀담아 듣는 티가 나지않을수없게 애정이 가득했다.
그에게 이야기하는 옥윤 또한 그에게 이야기하면서 종종 수줍은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억지스럽고 가식적이기보다는 정말 애정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지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영신은 둘의 관계를 눈치챈 듯 별 말없이 식사를 하다 질긴 고기를 만나 질겅질겅 씹으며 슬쩍 제 의문을 표했다.


"두 사람은 상사와 부하 관계 아닌가, 공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에서 그래도 되는건지"


'그래도' 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듯 옥윤은 이미 예상한 눈치로 말없이 웃을뿐이요 그에 대한 대답은 석진이 대신 해주었다.


"들키지만 않으면 돼. 그리고 들킬 일 없어보이고."


그러며 서롤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여기선 그나 나나 부부이니까. 세상이 모르는."


영신은 잘 씹히지 않는 고길 곱씹으며 눈을 숙였다. 미소짓는 옥윤은 누구보다도 아름답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데"


옥윤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석진은 어느덧 진지한 얼굴로 영신을 쳐다보고있었다.


"이름이 어찌되지"

"대장님."


옥윤은 그를 부른다. 눈이 마주치고 석진은 영신을 쏘아보았다.
영신은 더이상 육즙이 흘러나오질 않는 질긴 덩어리를 꾹 삼켜 와인을 들이키곤 그를 쳐다봤다.


"...우리에겐 영향이 없었음 좋겠구만"


그는 식사로 눈길을 돌린다. 영신도 다시 고기를 치우곤 감자쪽을 집으며 그의 옆으로 뻗어나는 팔을 쳐다봤다.
옥윤이 석진의 밥그릇에 반찬을 올려놓았다. 석진이 훗, 웃으며 그것을 떠 복스럽게 씹었다.








"경성에 가면 암살작전이라도 하는 건가."


이부자리를 펴주는 옥윤에게 서있던 영신이 물었다. 그녀가 주름을 펴 주고는 일어나며


"이 이상은 묻지않는 것이 좋을겁니다."


편히 쉬다가세요. 하며 방을 나선다. 영신은 깜깜한 복도로 사라져가는 옥윤의 등을 지켜보았다.
다시 방으로 돌아서 창을 쳐다보던 그는 피어오르는 연기에 밑을 내려다보았다.











행복한 부부.

둘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신은 천천히 창문가에 다가가 오후에 이불을 걷는 옥윤을 쳐다보았다. 노을빛이 그에게 비춰져 그의 그윽한 눈동자에 한가득 노란빛이 차올랐다. 색은 뜨겁지만 한산한 온도다. 그의 시선이 서서히..


"경성에 가면 무얼 먼저 하고싶나?"


영신의 시선은 한곳에 정지되어있었다.
 

"그런 걸 왜 물으십니까? 이뤄주기라도 하실겁니까?"


웃음기가 젖은 옥윤의 대답, 소리없지만 석진의 웃음이 보이는 듯하다.

  
"하아... 일단 커피란것도 마셔보고싶고.. 연애란 것도.. 해보고싶고.."
 

그녀가 이불을 내려놓곤 석진이 앉아있는 나무의자에 앉아선 그에게 기대 말했다. 석진이 고갤 갸우뚱인다
 

"연애라면 지금 하고있는 게 연애 아니고 뭐지." 
 

그가 웃는다.
옥윤의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우리 꼭.. 살아서 만납시다, 대장님."


영신은 창가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노을빛에서 멀어져 점점 그늘이 차는 그의 얼굴, 그의 눈동자만이 어둠속에서 반짝인다.

서로를 부부라 칭하는 남여에게 나는 홀리고 말았다.










경성.
차에서 내린 옥윤이 꼭 묶은 머릴 흔들거리며 석진을 보곤 슬며시 웃는다. 석진도 곧 차차 멀어짐에 따라 그녀를 바라보다 그도 손을 들어 인사했다. 옆에 서있던 영신이 옥윤의 뒷모습을 지켜보고있다.
 

"이제 이별이네"
​ 

옥윤이 그를 돌아본다, 영신이 움찔이며 뒤로 물러났다.
 

"뭐, 아무쪼록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안녕히."










내 사랑하는 연인에게














*1



 

경성으로 떠나기 전, 집안을 정리하느라 옥윤은 바쁘다. 그녀를 지켜만보던 영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너진 것을 다시 옳게 세워놓고, 벽에 걸린 사진들을 떼고, 그녀가 준비해놓은 것들을 다시 걸어놓는다.
바삐 옷을 챙기던 옥윤이 그를 힐끔쳐다보았다.
 

"그래도 양심은 있군" 


조심스럽게 액자에서 손을 떼던 영신이 그녀를 보았다. 그녀가 그를 보곤 피식 웃었다.


"경성에 가면, 우린 모르는 사람인겁니다"
 

영신의 시선은 서랍 위에 올려진 파이프로 향했다. 그가 그걸 주워 옥윤에게 내밀자 아, 대장님꺼 하며 받던 옥윤이 또 괜히 그를 보며 씨익 웃는다.
 

"왜 자꾸 나만 보면 웃는거야" 
 

그가 결국 한마디 꺼낸다. 옥윤은 그저 싱글싱글 웃는채로 정리를 하다 서서히 표정이 굳어져갔다.
 

"지금 웃어두지 않으면, 영영 웃지 못 할 것 같아서."


그녀를 쳐다보던 영신의 얼굴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그는 고갤 숙이다 다시 들더니


"왜 영영 웃질 못 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데."


그녀가 붉게 충혈된것같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녀가 웃는다.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질 것처럼.









*2





​"듣자하니, 경성엔 처음인가봐"


장비를 챙기던 옥윤의 옆에서 덩달아 총을 손질하던 영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가 저격총을 들어 철컥 철컥, 점검하곤 그를 본다.


"우리 대화를 엿들었습니까?"

"아니 뭐, 듣고싶어 들은 건 아니고.."

"...."


그녀가 갑자기 총구를 영신에게 들이밀었다. 그가 총을 쥔채로 두 손을 올렸다.
그녀가 쏠듯이 한쪽 눈을 꾹 감더니 이내 씩 웃으며 총을 내려놓았다.


"그면 그쪽은 여러번 가봤나 봅니다"

"2번"

"경성사람이네, 만주인인줄 알았더니"


그가 말없이 웃는다.


"있잖아, 경성엔 피라미들이 많아."


그녀의 눈썹이 좁혀졌다. "피라미가 뭡니까?"
영신 역시 미간이 좁혀지더니 음...

​​
"열대지방 물고기."

"물고기 얘기가 왜 나옵니까?"

"아니 그게... 뜯어먹는 종자들이 많다고"


그녀가 또 엉뚱하단 듯 웃었다.


"그쪽 가끔 허당인거 압니까"


영신은 전혀 납득이 되지않는단 표정이다. 그녀는 그의 표정에 더 웃었다.


"염대장님도 가끔 그러시는데, 그쪽이 더 멍청한 거 같아"


끄응.. 그게 아닌데. 란 표정으로 곤란해하던 그는 자기도 모르겠단 듯 고갤 저어버리곤 그냥 웃어버렸다.


"염대장님도 피라미를 아실까"

"모를 거 같은데"

"그면 나랑 장난 좀 칩시다"

"... 싫어."​


옥윤은 영신을 쳐다봤다. 그래도 소용없단 듯 그가 시선을 피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말하는게 아닌 듯 여전히 자길 보고있자 다시 슬쩍, 그녀에게 눈길을 굴렸다.

옥윤의 새하얀 얼굴에 고운 비단 치마의 엷은 주름처럼 미소가 지어졌다.

또.
또 웃는다.


"아쉽네, 같은 동지였음 더 좋았을련만"


그래놓고 그녀는 해선 안 될 말을 하기라도 한듯 입을 꾹 다물었다. 영신 역시 조용했다.

...옥윤의 손이 갈피를 잡지 못 하는 듯 혼자 까닥까닥 움직였다.

​영신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3

 

촤아. 촤아. 세수를 하고 나선 석진은 거울을 보곤 한번 얼굴을 훑었다. 뒤로 걸어가던 영신이 저도 모르게 슬쩍, 그에게로 시선이 간다.
 

"둘 사이에 그리 할 말이 많은가봐."
 
 
그는 멋대로 움직이던 발을 멈춰 석진을 쳐다봤다.
마른 천으로 얼굴을 닦던 석진이 수건 사이로 그를 봤다. 
그는 말없이 서있지만 눈으로 무언가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내 그가 자리를 떠났다.

영신은 슬쩍, 그가 서있던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머릴 쓸어넘긴다, 건조한 머리가 넘겨지고 넘겨지고 어느 순간, 손짓을 멈추곤 빤히 거울을 쳐다봤다.
그는 거울을 통해 다른 것을 보고있는 듯 싶다.









*4





"드디어 내일이야. 우리작전."


옥윤이 뽀득뽀득 안경알을 닦아 곱게 귀 뒤로 넘겨 쓰곤, 초롱거리는 눈으로 영신을 바라봤다.


"그런 걸 나한테 막 알려 줘도 되는 건가."

"차피 그리 비열해 보이진 않았는 걸, 뭘."


그녀에게 허릴 숙이며 장난스럽게 웃는 그에 옥윤은 담담하게 답변하면서도 슬쩍, 끝엔 웃음이 겉돌았다. 그녀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던 영신의 입가에도 언제부턴가 미소가 흐리게 남아있고, 그의 시선이 그녀를 지나 멀리, 흐릿해진 천 사이로.... 누군가와 통화중인
아. 눈이 마주쳤다.


​누군가에게 시선이 빼앗겨 있던 영신은 제 앞에 서있는 옥윤을 보곤 핫.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어딜 보는 건가, 그를 쳐다보다 뒤를 돌아보았고 곧 통화중인 염석진을 확인하곤 다시 그에게로 돌아왔다.
영신은 시선을 처리하지 못하고 서서히 그녀에게서 뒤로 물러났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5





'무엇을 보아도 알지 못 할 것 같을 땐 어찌해야할까, 영감'

'어중간하게 얘기하지 말고, 본론을 이야기하세요 도련님'



영신은 거울 앞에 섰다.
제 모습을 본다. 코트. 중절모. 가꾼 지 좀 오래된 수염. 정착하지 못한 사람.


'...나에대해서 모를 땐 어찌해야 될 질 모르겠단 그 말이었어'


그는 차차 뒤를 돌아보았다.


'사랑에 빠지셨군요'


그가 울렁거리는듯 다시 앞을 본다. 일렁거리는 제 모습. 불안정한 얼굴은 마치 그때 그 날의 자신과 같다.








*6



​영신은 옥윤을 지켜봤다. 모자를 쓰고선 굳은 의지가 담긴 표정으로 그녀는 멀어지는 염석진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느새 저만치 멀어진 석진은 그녀에게 손을 들어보였다. 옥윤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번진다.


"이제 이별이네"


















헉,





헉,









옥윤은 식은 땀에 젖은 채, 벽과 벽을 짚으며 불안정하게 걸어갔다.
손에 쥐어진 총. 그녀는 혼란스럽게 걸으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잡아라!" "밀정잡아라!"

그녀는 휙,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단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다 다시 제 앞을 보았다.

헉...

그녀는 다시 걸어간다. 절 보고서 웃던 그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염대장님... 그녀가 중얼인다. 곧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안옥윤 동지! 염대장이 밀정이었습니다! 놓치시면 아니됩니다 동지!"


울 것 같은 얼굴로 불안정하게 걸어가며 그녀의 얼굴은 곧 다시 어두워졌다.
이내 눈을 치켜뜨고선 힘있게 걸어간다. 이악물고.



헉,
골목을 빠져나온 옥윤 앞에 거짓말처럼 영신이 서있었다. 그녀는 마주친 상대에게 총구를 내밀다 영신임을 인식하곤 총구를 내렸다.

​멍하니 그를 쳐다보던 영신이 한걸음, 그녀에게로 다가오고 그녀의 총을 쥔 손에 꽉 힘이 들어갔다.


"여기로 지나간 사람... 염대장님 못봤어..?"










'대장님.'


옥윤의 양 어깨를 잡은 석진의 눈이 마구 흔들렸다. 망설이는가 싶더니, 그녀를 놓곤 도망쳐버린다.

발갛게 눈이 충혈이 되어선 눈 주변이 붉게 물든 옥윤이 허망하게 염석진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도망가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봤다. 옥윤이 주섬주섬 총을 꺼내는 것을 보고 그는 발을 재촉했다.


​"염석진!"


뒤에서 안옥윤의 목소리가 들린다. 누군가를 찾는듯 두리번이며 걸어가던 영신은 쿵, 저와 부딪혀 벽에 기대 허헉이는 남자를 보곤 일시정지 되었다.

아. 그는 급히 총을 꺼내 그에게 댔다.
염석진은 마치 사냥꾼에서 쫓기는 짐승과 같이, 눈을 번득이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더욱 손에 힘을 주었다. 염석진은 슥 총을 내려다봤다. 그의 시선이동에 따라 자신의 마음도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염석진이 손으로 힘없이 툭, 총을 쳐냈다.
저도 모르게 쳐내졌다.
염석진은 휘청거리며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를 봤어?"


안옥윤이 불안한 얼굴로 제게 묻는다. 영신은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겠단 눈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옥윤을 바라만 봤다.


"...못 봤어."


하아. 귓가에서 울리는 숨소리.

제 앞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울망한 옥윤을 두고서 영신의 정신은 다른 곳에 가있었다.

하아. 또 한번 귓가에 울린다.
제 얼굴을 살피던 눈. 살짝 벌려진 입가.

​​
"왜... 왜.... 거짓말을 하는거지?"


옥윤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염석진이 달아난 방향대로 뛰어가자, "저기." 영신이 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


"그쪽이 아냐, 이쪽이야.."

​​
옥윤은 그를 빤히 쳐다봤다. 영신 역시 결백하단 듯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세수를 마치곤 천으로 턱을 훔치던 그.
거울속에 비춰진, 훔쳐본 모습.

이내 옥윤은 영신이 알려준 방향대로 뛰어갔다.
영영 염석진과 갈라지는 방향으로, 그녀는 사라져버렸다.

영신은 힘없이 벽에 기댔다, 그가 기댔던 벽이다.

그가 자신의 총을 쳐낼때 닿았던 순간, 그의 손바닥의 혈관이, 그의 온기가, 이 차가운 총을 타고서 전해져오는 기분이었다.

그는 머리를 벽에 기대며 후.. 숨을 뱉었다.
들이쉬고, 다시 또, 후...


'사랑에 빠진거야? 이런게……?'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지른건지.... 그제야 영신은 죄책감에 얼굴을 마구 문질렀다.
그의 눈에도 다른 의미로서의 눈물이 글썽해졌다.

미안... 그는 중얼였다.

'넌 날 못쏴.'

그는 대놓고, 자신에게 그리 말하고있던 것이었다.​








*1​





"경성에서 암살 작전이 있을거야.
조선인 여자 한명, 사격에 능통하니 주의하고."


영신의 눈이 굴러갔다. 눈이 마주치자 염석진은 휙 등을 돌려버렸다.


"그밖에 독립군은 아직 몰라, 알게 되면 따로 연락하도록 하지."


그는 미련이 남은듯 수화기를 손에 쥐고 만지작이다 턱. 내려놓았다. 영신이 코트를 벗곤 가벼운 옷차림새로 석진에게 다가왔다.


"방랑자는 방랑자답게 사라지는거잖아"


그를 스쳐 지나가려던 영신이 걸음을 멈췄다.


"자네랑은 상관 없는 일이야, 그렇지?"









*2





"좋아해, 사랑해라는 말보단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게 훨씬 좋은 방법이야"


발로 빨래를 짓밟으며 염석진은 저가 말해놓고도 우스운지 실소를 터트렸다.


"진심, 아니었어?"


저만치에서 파이프를 빨던 영신이 물었다.


"진심..?"


진심이라.. 그는 중얼인다.
가여운 여자군. 영신이 중얼이고 염석진은 그것을 듣지 못한 듯 계속해서 진심이라.. 중얼이며 생각에 잠겨있었다.

영신의 시선이 자길 보고 있는지도 모르는 듯.
그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을, 戀慕하고있는지도 모르는 듯.


"죽진 않았음 좋겠다하면, 이기적인 게 되버리니까."

​​
영신은 서둘러 시선을 치웠다. 염석진은 다시 발을 움직였다.

​​
"...당신 충분히 이기적이야."


염석진은 쓰게 웃었다, 그거 맞는 말이군.








*3



대화를 하고 있던 영신과 안옥윤에게로 염석진이 다가오자 옥윤은 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녀를 보며 슬쩍 웃던 염석진은 약간 떨떠름한 얼굴로 영신을 보곤 제가 챙길 것을 주섬, 챙기며 입을 열었다.


"정이 들었나."

​​
영신은 고갤 숙였다.


"방랑자한테 정이란 게 어딨어."

​"독립군이 아니라 보통사람이었다면 좋았을텐데"


그가 염석진을 의아스럽게 쳐다보았다.
염석진은 자신의 표정이 어떤지 모르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지워버리곤 냉철하게 방을 나가버린다.

영신은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멍하니 선 채로 멈춰있었다.













뚜벅, 영신은 텅 빈 여관에 발을 들였다.
바닥에 쓸리는 소리가 나자 그의 눈이 빠르게 굴러갔다. 염석진이다.

마치 처음부터 누구도 살고있지 않았던 것처럼 낯선 여관. 염석진은 숨을 고르다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
"그 사람에게 거짓말을 했나"


영신은 대답하지않았다. 염석진은 이미 이성을 놓은 사람처럼 멍하니 허공을 본 채 있었다.


"왜 그랬지. 이상한 방랑자군"

​​
레코드판이라도 있었음 좋았을텐데, 이놈의 여관은 심심하기 짝이 없어.
하긴 이런때에 음악이란 게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 말야.
 

"자넨 이제 어디로 가나"
 

침묵을 깨고 영신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음악이 나오는 곳을 알아. 사람도 많고."
 

같이 가겠어?
염석진은 땀에 젖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총에 맞은 복부를 감싼 손을 슬쩍 치우곤 흐.. 힘 풀리게 웃었다.


"그면 난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겠군."


그러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두명의 독립군은 다시 볼 수 없었다.
다시 만나고싶다,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연인이었고 부부였고 한 때 같은 목적을 가진 동지였던 둘은 서로를 죽일지언정 다시 사랑할 순 없겠지.

그 여자, 웃지 못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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