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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니?

-아직이요...아저씨는요

-......밥 먹자.




집에 들어온 범수는 영락뿐인 거실에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화이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지 5일째. 범수는 또 혹여나 화이가 가 있을만한 곳을 모두 돌고 오는 길이었다.

범수는 계란찜을 식탁에 올려두고, 영락은 젓가락을 집었다. 친구 아버지와 아들 친구라니. 참 기묘한 조합이다.

그래도 교복 입은 영락의 모습이 화이와 겹쳐보였던 것일까, 범수는 괜히 오뎅볶음을 영락쪽으로 더 밀며 붉은 입술을 꾹 물었다. 영락은 그런 범수의 입술을 쳐다보다 시선을 돌려 오뎅을 집었다.

영락은 화이의 집에 자주 놀러오곤 하였다. 말주변이 없던 화이가 유일하게 어울려 지내던 친구기도 하고, 혹여나 화이가 영락을 보러 집에 돌아오기라도 할까 범수는 화이 없이도 꼬박꼬박 제 집마냥 와있는 영락을 내치지 않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텅 빈 집에 앉아 티비를 틀고 보다 저를 돌아보는 영락의 모습에 정이 들기도 했다.

영락은 제 앞에서 늘 과묵했다. 화이의 옆에서도 그리 밝아보이진 않았다.
반면에 화이는 뭐그리 좋다고 히죽히죽 잘만 웃던지.. 빤히 눈을 맞춘 채 가만히 이야길 들어주는 영락이 굉장히 맘에 들었던 모양이다.


-제가 치울게요...!


영락은 빈 그릇을 들고 가는 범수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범수는 그를 돌아봤고 영락은 어서 이리 달라며 범수로부터 그릇들을 받아갔다.

곧잘 설거지 하는 모습이, 미안하긴 한걸까. 밥 먹은 값은 하련가. 하고 흘겨보며 범수는 식탁에 걸터 앉아 담뱃불을 붙였다.


-아ᆢ선생님께서, 화이 어떠냐고 물어보셔서 독감이 심하게 걸렸다고 말씀드렸어요. 오늘도 화이한테 숙제를 알려준단 명목하에 온거에요.


..범수는 입에 문 담배에서 연기를 흘린 채 영락의 얼굴을 가만 쳐다보았다.
맞다, 범수는 영락의 저런 모습에서 가끔 거북스러움을 느꼈다. 모든 어른에게 저리 깍듯한가? 싶으면서도... 묘하게 자신에겐 특별하게 구는 뭔가가있다.

제 얼굴을 빤히 보는 범수에 영락은 멋쩍은 웃음을 흘리곤  다시 설거지에 열중했다.
범수는 담배를 뻐금거리며 영락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오늘, 고마웠습니다. 화이 돌아오면 꼭 화이한테 연락주라고 전해주세요.


범수는 깨닥이고는 잘가, 작게 중얼거리며 손을 대충 들었다내렸다다. 그 모습을 뿌듯하게 보던 영락이 슬쩍 입가를 올리곤 현관을 나섰다.

가만, 텅 빈 거실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범수는 화이야.. 화이야.. 작게 이름을 불렀다.
원망스럽게 저를 노려보기만 하던 그 아이가 집을 나가고, 범수의 눈은 그를 떠올리기만 하면 붉게 충혈되어 젖어들었다.


-아저씨.


노크소리에 범수는 벌떡 일어나 눈가를 훔치며 현관으로 다가갔다.


-아까, 책을 놓고 간 것 같아서요.


문 너머 영락의 목소리에 범수는 슥 고갤 돌려 책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문을 열어준다. 죄송하다며 들어오던 영락은 범수의 얼굴을 보곤 멈칫, 걸음을 멈췄다. 범수가 그를 쳐다보자 아, 하곤 책을 챙기러 들어간다.


-숙제하다 깜빡했나봐요..


범수는 눈을 감곤 미간을 주물거리며 머쓱해할 뿐이었다.
아... 범수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영락은 문득


-제가 같이 있어드릴까요.


묻는다. 범수가 손을 멈칫이고, 영락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범수를 보고 있었다.


-힘드시잖아요.


이어지는 영락의 말, 그래 이거.
범수는 하.. 웃음을 흘리며 손을 내렸다. 여전히 붉게 부운 눈가로 그렁거리며 영락을 본다.


-내일이.. 무슨 요일이지
-토요일이요.


..범수는 성큼, 다가오는 영락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영락은 빤히 범수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래.. 화이랑도 그랬으니까..


허가가 떨어지자 영락은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하.. 또다. 범수는 현관을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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