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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쩜오/신세계

정청자성 1

감감님 2019. 1. 31. 02:35
14.03.22.


파리한 보리가 차갑게 웃고 있었다
마을 속으로 들어가는 논길
어머니의 손같이 터진 땅을 걸어
늙어 파리해진 어머니의 그 손을 잡고
섧게 웃는다 보리처럼 나는

이유경, 보리 中




_

검은산에 뒤덮인 동네에 밤이내리면 칠흑이었다.
그래도 넓은 하늘엔 황홀한 별빛들이 가득했고, 그것들을 다 눈에 담을수없지만 자성은 항상 그것들을 담아내려애썼다.

밤엔 이리 황홀한 하늘이거늘, 아침만되면 그전날밤의 황홀함은 모두 물거품처럼 가셔버린다. 그래서 더더욱 자성은 담고싶고, 기억하고싶었다.


고소한게 구워지는, 쌀과자냄새가 가시고 시끄랍던 아이들의 목소리들이 모두 집에가버리고나면 동네는 숨막힐정도로 조용해졌다, 등놀이는 모두 끝난건지 강가엔 아직 떠나보내지못한, 떠나가지못한 등들이 잔잔히 떠있고 투명한 수면에는, 눈을 환하게 찌푸라지게할만큼 훤한 별빛들이 비춰 꼭 하늘이 위 아래 둘다 존재하는것처럼 보였다.


그믐달인지 초승달인지, 채워지지못한 달이 떠있고 간간히 들리는 벌레울음소리가 사락 사락, 자성의 발이 잔디를 밞는소리와 겹쳐 더욱 숨죽이고싶게 만들었다.


머무는 등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자성이 무릎을 굽혀 들고있던 등을 조심스레 수면위에 놓아줬다, 간지러운 물결을 내며 등이 조금씩, 조금씩, 떠나갔다.

하얀 뼈대가 선명한 손으로 입과턱을 감싸고는, 새카만 동네를 고요히 비추며 물길을 따라 떠내려가는 등을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이 수면에 비춰 일렁였다.


바람이불었다. 사락 사락 나뭇잎이 서로 흔들어지며 소릴냈고, 동네는 여전히 아주 새카맣고 그리고 조용했다.


찰랑, 허벅지에 앉혀졌던 풍랑이 미끌어지고 자성은 수면을 들여다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들이 반짝 반짝, 그 반짝임을 담은 자성의 눈동자가 깜빡 깜빡, 이내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걸을 때마다 풍랑이 울렸고, 서서히 바람이 다시불어왔다.








줄줄이 흰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관을 이고서 곡노래를 부르며 산을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던 자성은 문득 담배를 빼물면서도 시선은 여전히 그들에게 고정된채로 미간 사이를 구기고서는 뭔가 생각에 잠긴듯 심오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그의 옆에 서있던 청이 자성을 쳐다보았다, 뚱한 그의 표정에 자성은 곧 싱겁단듯 푸식 웃으면서도 여전히 담밸 물고있다, 연길 한모금 마시던 그가 조금 느리게 뿜어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렇게, 살아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 괜히 나도 살아있는것같고, 역동적인것같단말이오"


그가 슬쩍 청을 보지만 담배끝을 잘근거리며 두손을 주머니에 쑤셔넣어놓고선 서있는 청은 영 별로 감성따윈 젖어있지않은표정으로 서있었다. 자성은 살짝 광대가 올라가 눈이 찌푸라린것과같이 웃음을 지으며 고갤 외면하고서 길게 연길 뿜어냈다.


"형은 내가 담배피는것이 꼴 사납지요"


그의 말에 청은 아까의 자성과도같은 표정으로 한숨이 섞인 담배연길 토해내며 담밸 훅 바닥으로 던져 짓밟았다.


"나는 근데, 저들을 보면, 꼭 살아있는 이들을 보면, 이리 담밸 태우진않고서는 견딜수가 없더랍니다"


이라며 제 자신을 비꼬듯이 말끄트머리를 늘어트리며 자성이 건들하게 다릴 달달 잠깐 떨고서는 다시 담배를 빨아들이는것이었다.

청의 시선이 청푸르고 짙은 나무에게서 산의 굵고 각진 면에서 인간에게로, 그들의 노래로, 청의 눈에도 어느새 연민이란것이 내려와앉았다.


"..  누군가는 너를, 기억하고 있을거여"


깔린 음성이 퍼진다. 자성은 재를 털며 짧게 조소를 하고는 고갤 한번 갸우뚱이듯 까닥였다.


"그렇지않소. 나는 잊혀진 사람이오."


청은 그제야 다시 자성을 보았다.
비로소 자성은 매우 슬픈 얼굴로서 담밸 끝도보이지않는 아득한 아래로 떨구어버리고서는 서글프게 웃는것이었다.

청은 살짝 충격에 받은듯한 얼굴로서 그를 바라보다 담배가 이미 떨어지고안보이는 그 아득한 밑을 내려다보는것이었다.


"아무도.. 기억해주질않는다..."


청은 그 밑을 뚫어져라 내려다보며 무의식적으로 말을 중얼였다, 자성은 아무렴듯 무심하게 다시 새 담밸 빼물었다. 사람들이 멀리멀리 사라진다. 자성은 엉성하게나마 그들이 불렀던 노래를 흥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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